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과학자’라는 직업군은 없다. 교수, 연구원, 선생님 등이 과학자일 것이다. 그걸 인식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과학자라는 범주 안에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희망 직업군을 생각해냈다. 에디슨 같은 발명가가 되고 싶기도, 아인슈타인같은 물리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별(천문)에 관심이 많아진 뒤로는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이름이 멋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설명해줄 때 뿌듯함이 있었다.
사실 천체물리학자라는 말은 <과학소년>이라는 잡지에서 본 것이었다. 어떤 학생이 <과학소년>에 사연을 담아 보냈는데, 거기에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게 자신의 꿈이라고 쓴 것을 봤다. 당장 그 단어를 차용해 내 꿈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당시 별자리를 알아맞히고 성단 성운 등의 사진을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었다. 어린 아이의 단순함을 배우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 명쾌하고 시원하게 꿈을 설정하고 나니 어린 인생이 즐거웠다.
케플러의 123법칙, AU, 광년,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여름철 대삼각형과 소삼각형, 오리온자리와 플라이아데스 성단 등을 특히 좋아했다. 지금 회사에서 아둥바둥 일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당시 시각은 상당히 거시적인 셈. 우주적인 마인드로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졌다. 낮보다는 밤이 좋았다. 작은 쌍안경으로나마 달과 별을 보는 게 좋았고, 천문대라도 갈라치면 굉장히 설렜다.
과학자의 꿈을 접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택한 건, 직업으로서 과학자는 너무 정적일 것 같아서다. 직업과 성격이 분명 연관성이 있을 테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문과라고 정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한히 정적일 수 있는 것도 문과일텐데, 과학자들이 개인주의적으로 연구에만 미친듯이 매달리는 모습이 오버랩 돼 외향적인 성격 상 문과가 좋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지금의 일에 굉장히 만족한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미련은 항상 남는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서점에 가면 과학 코너에서 상대성 이론 만화책,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수학의 비밀 같은 책들을 본다. 인터넷에서 달 착륙 사진, 별 사진을 보는 것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과학편이 무지하게 재밌다. 거기에 나오는 과학과 기독교에 독실한 ‘이독실’이라는 패널에 굉장한 애착이 간다.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새로운 앨범을 냈는데, 그 컨셉이 세상의 ‘기본’이다. 앨범의 이름은 <베이직(BASIC)>. 제목을 보면, 신세계, 웜홀(warmhole), wave, 신의 입자, Fractal 등 과학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단어들이 줄지어 나온다. 웜홀은 그 ‘벌레구멍’이 아니라 ‘따뜻한 구멍’이긴 하다. 신의 입자는 힉스를 말하는 걸까?

웜홀의 가사를 보자.
‘우린 온몸을 다 부딪쳐 / 여기저기 다치게 / so warm fire in the hole / warm fire in the hole / 너는 나란 터널에 갇혀 / 그 속을 다 어질러 / it’s so warm fire in the hole / warm fire in the hole.’ 나만 야하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이상한가…
신의 입자는 이렇다. ‘
너에게 나의 몸을 맞춰 / 나에게 너의 몸을 맞춰 / 퍼즐처럼 들어 맞아 / 마침내 나는 너란 답을 찾아 / 이쯤에서 왼손으로 / 감싸 안고 rolling / 이쯤에서 두 손 위로 들고 / let’s get up moving now.’ 신의 입자라는 단서는 ‘가벼운 존재’라는 앞부분 가사에만 살짝 드러나는 것 같은데 왜 신의 입자인지 모르겠다. 가사 해석은 상상에 맡긴다.
Fractal(프랙탈) 가사는 좀 낫다.
‘저 아픈 기억 조각들은 / 감정의 전부가 되고 / 끊임없이 반복되네 again again.’ 조각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프랙탈의 성질이 있다. 이별 후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사실 가사들을 보면 과학 용어에 대한 아주 얄팍한 개념 정도만 파악한 채 감정을 형상화한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통상적인 사랑 노래에 의미없이 차용했다는 느낌을 준다. 이래놓고 마치 자신들이 ‘세상의 기본’들을 논하는 듯이 말하는 건 곤란하다. 대중가요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콘셉트를 약간 오버해서 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케팅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까지 안 하면 안 될 정도로 마땅한 전략이 없었던 걸까.
문득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이 떠오른다. 내 생애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3권 정도 꼽으라면 그중 1권은 이걸로 거의 정해져있다. 수학자 페르마가 책 귀퉁이에 휘갈기듯 써놓은 한 문장 때문에 몇백년간 수학계에 난제로 남은 명제가 풀려가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엮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한 채 읽어도 스토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이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밥 먹을 때도, 똥을 눌 때도 읽었다.
‘페르마’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쓴다면, 미지의 인생을 살지만 언젠간 답을 찾을 것이란 희망을 담지 않을까 한다. 페르마의 정리를 풀지못한 채 죽어간 수학자들이 많았던 것처럼 나도 인생의 답을 명확히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 도전의 ‘멋있음’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노래라면 들어주고도 싶을 것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