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아걸 새 앨범이 과학용어들로 꽉 찼길래

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과학자’라는 직업군은 없다. 교수, 연구원, 선생님 등이 과학자일 것이다. 그걸 인식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과학자라는 범주 안에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희망 직업군을 생각해냈다. 에디슨 같은 발명가가 되고 싶기도, 아인슈타인같은 물리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별(천문)에 관심이 많아진 뒤로는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이름이 멋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설명해줄 때 뿌듯함이 있었다.

사실 천체물리학자라는 말은 <과학소년>이라는 잡지에서 본 것이었다. 어떤 학생이 <과학소년>에 사연을 담아 보냈는데, 거기에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게 자신의 꿈이라고 쓴 것을 봤다. 당장 그 단어를 차용해 내 꿈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당시 별자리를 알아맞히고 성단 성운 등의 사진을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었다. 어린 아이의 단순함을 배우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 명쾌하고 시원하게 꿈을 설정하고 나니 어린 인생이 즐거웠다.

케플러의 123법칙, AU, 광년,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여름철 대삼각형과 소삼각형, 오리온자리와 플라이아데스 성단 등을 특히 좋아했다. 지금 회사에서 아둥바둥 일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당시 시각은 상당히 거시적인 셈. 우주적인 마인드로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졌다. 낮보다는 밤이 좋았다. 작은 쌍안경으로나마 달과 별을 보는 게 좋았고, 천문대라도 갈라치면 굉장히 설렜다.

과학자의 꿈을 접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택한 건, 직업으로서 과학자는 너무 정적일 것 같아서다. 직업과 성격이 분명 연관성이 있을 테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문과라고 정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한히 정적일 수 있는 것도 문과일텐데, 과학자들이 개인주의적으로 연구에만 미친듯이 매달리는 모습이 오버랩 돼 외향적인 성격 상 문과가 좋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지금의 일에 굉장히 만족한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미련은 항상 남는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서점에 가면 과학 코너에서 상대성 이론 만화책,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수학의 비밀 같은 책들을 본다. 인터넷에서 달 착륙 사진, 별 사진을 보는 것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과학편이 무지하게 재밌다. 거기에 나오는 과학과 기독교에 독실한 ‘이독실’이라는 패널에 굉장한 애착이 간다.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새로운 앨범을 냈는데, 그 컨셉이 세상의 ‘기본’이다. 앨범의 이름은 <베이직(BASIC)>. 제목을 보면, 신세계, 웜홀(warmhole), wave, 신의 입자, Fractal 등 과학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단어들이 줄지어 나온다. 웜홀은 그 ‘벌레구멍’이 아니라 ‘따뜻한 구멍’이긴 하다. 신의 입자는 힉스를 말하는 걸까?

웜홀의 가사를 보자.

‘우린 온몸을 다 부딪쳐 / 여기저기 다치게 / so warm fire in the hole / warm fire in the hole / 너는 나란 터널에 갇혀 / 그 속을 다 어질러 / it’s so warm fire in the hole / warm fire in the hole.’ 나만 야하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이상한가…

신의 입자는 이렇다. ‘

너에게 나의 몸을 맞춰 / 나에게 너의 몸을 맞춰 / 퍼즐처럼 들어 맞아 / 마침내 나는 너란 답을 찾아 / 이쯤에서 왼손으로 / 감싸 안고 rolling / 이쯤에서 두 손 위로 들고 / let’s get up moving now.’ 신의 입자라는 단서는 ‘가벼운 존재’라는 앞부분 가사에만 살짝 드러나는 것 같은데 왜 신의 입자인지 모르겠다. 가사 해석은 상상에 맡긴다.

Fractal(프랙탈) 가사는 좀 낫다.

‘저 아픈 기억 조각들은 / 감정의 전부가 되고 / 끊임없이 반복되네 again again.’ 조각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프랙탈의 성질이 있다. 이별 후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사실 가사들을 보면 과학 용어에 대한 아주 얄팍한 개념 정도만 파악한 채 감정을 형상화한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통상적인 사랑 노래에 의미없이 차용했다는 느낌을 준다. 이래놓고 마치 자신들이 ‘세상의 기본’들을 논하는 듯이 말하는 건 곤란하다. 대중가요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콘셉트를 약간 오버해서 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케팅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까지 안 하면 안 될 정도로 마땅한 전략이 없었던 걸까.

문득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이 떠오른다. 내 생애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3권 정도 꼽으라면 그중 1권은 이걸로 거의 정해져있다. 수학자 페르마가 책 귀퉁이에 휘갈기듯 써놓은 한 문장 때문에 몇백년간 수학계에 난제로 남은 명제가 풀려가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엮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한 채 읽어도 스토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이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밥 먹을 때도, 똥을 눌 때도 읽었다.

‘페르마’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쓴다면, 미지의 인생을 살지만 언젠간 답을 찾을 것이란 희망을 담지 않을까 한다. 페르마의 정리를 풀지못한 채 죽어간 수학자들이 많았던 것처럼 나도 인생의 답을 명확히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 도전의 ‘멋있음’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노래라면 들어주고도 싶을 것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디턴 논쟁: 한겨레와 한경의 시각차를 확연히 드러내는 사례

앵거스 디턴이 성장론자인 건 맞다. 본인도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다. “모든 분별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친성장(pro-growth)론자이다.” 디턴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디턴은 이렇게 부연한다.
“불평등은 성장의 부산물일 수도 있고, 성장을 위한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불평등)은 성장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장단점에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한겨레는 이 부분에서 불평등이 성장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는 워딩을 뽑아서 제목을 달았다. 디턴이 이렇게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2014년 한경BP에서 출판한 <위대한 탈출>에 대한 반박의 의미를 가진 제목일 것이다. <위대한 탈출>의 부제는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였다.

이에 대해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은 11월 3일자 칼럼에서 “디턴의 본질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며 “부분의 진술을 진술의 전부요 핵심인 것처럼 치환하는 교묘한 편집”이라고 비판했다. 과도하게 비판한 것처럼 보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한 건 둘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연구 업적과 학문 성향에 관해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진다. 정규재는 위의 칼럼에서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는 디턴의 주장을 폭넓게 인용하고자 한다. 더하여 ‘성장론자’라는 그의 워딩을 인용하며, 작년 출판된 <위대한 탈출>의 부제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또다시 반박한다.

여기에 한경BP 측의 입장 또한 맥을 같이 한다. 한경BP는 편집 과정에서 서문(Preface) 중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해 겹치는 부분을 중심으로 뺐”다고 말했다. 또한 “원문을 100% 그대로 전달하는게 옳지만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읽기 편하게 만드는 과정의 하나”라며 번역이 왜곡됐다는 비판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부제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으니 원래대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원래 부제는 ‘대탈출: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이다.

정리하면, 한경 측은 디턴의 ‘성장주의’에 집요하게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한 연유로, 성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불평등 또는 빈부격차를 일정부분 수용하고, 거꾸로 불평등을 통해 성장이 촉진되는 것처럼 얘기하게 된다.

하지만 디턴이 말하는 성장이란, 한 국가 내에서라기보다 국가와 국가 차원에서 일어나는 그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옳지 않나 싶다. “디턴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주로 가난한 경제를 주로 다루는 개발경제학 분야에 있다”는 평가를 참고해보자.

혹자는 그가 “불평등이 성장을 축진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경제성장론에서 말하는 ‘수렴이론(Convergence Theory)이지, 개인이나 가계의 소득불평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종합하자면, 디턴이 스스로 밝힌 ‘성장론자’라는 정체성은 그의 삶에서 볼 수 있듯 지구촌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나온 워딩이라고 봐야 타당할 듯하다.

그렇다고해서 한겨레의 주장이 100% 타당하다는 것도 아니다. 한겨레는 ‘한경BP는 어떻게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왜곡했나’라는 김공회 교수의 블로그를 인용한 글에서 조목조목 한경BP 측의 왜곡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10/30 토요일판에 실은 디턴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 한겨레 측이 디턴을 불평등을 옹호하지 않는 학자로 포장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더불어 디턴 교수가 한국의 불평등한 경제 상황을 비판해줬으면 하고 질문의 방향성을 잡았다. 이는 위의 정규재 칼럼에서 비판한 내용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불평등이 성장을 실직시킨다”는 워딩만을 제목으로 뽑은 것만 해도 그렇다. 디턴은 상식적인 선에서 불평등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 같으나, 한겨레는 나쁘다는 측면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에 반해 한경은 좋은 쪽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둘다 살짝 지나치게 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손을 들어주자면 한겨레 쪽이 좀더 낫다. 디턴 교수와 직접 접촉해 문제점을 밝혔고, 한경의 비약에 비해 실제 디턴에 좀 더 근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경은 되려 당사의 경제적 관점을 책에 투영시킴으로써 저자를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객체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비슷하게, ‘피케티 vs 디턴’의 구도를 만든 것도 비약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대한 탈출>의 서문을 쓴 자유경제원 현진권 원장이 토마 피케티와 대비되는 문구를 넣은 것은 “마케팅 차원의 시도”였다고 한경BP가 밝혔다. 당시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대다수 언론으로부터 찬양에 가까운 찬사를 받고, 경제서적임에도 불티나게 팔린 것을 감안해 이런 대결구도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불평등에 대한 여러 시각이 있다고 하지만, 피케티와 대척점에 있는 학자로 디턴을 규정하는 게 무리라는 해석이 많다. 피케티 교수의 주장이 진보 측에 유리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보수신문’인 한경에서 이를 상쇄시키고자 한 시도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한국판 <위대한 탈출>은 프리스턴대 출판부와의 논의 끝에 새번역본으로 다시 나오게 됐다. 한경BP에서는 새 번역본이 출간됐을 때 기존 구입자들에게 교환해주겠다고 하니, 구버전을 신버전으로 바꾸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면 좋겠다.

ps. 이와는 별도로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불평등을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에너지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게 눈길을 끈다. 이야말로 디턴에 대한 완벽한 왜곡이며 원로 정치인으로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노벨상을 받아 유명세를 치르는 학자라고 하지만, 인용을 할 때엔 단편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다.

ps2. 한경BP에 이런저런 비판이 많겠으나, 수익 측면에서만 보면 호재일 수도 있다. 논란이 어찌됐든 책을 한번 더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 번역본이 출간되면 더 완성도 있는 서적으로 홍보할 수 있으니 이또한 좋은 일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최장집 교수

작년 6월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정치인 몇몇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해 기사가 난 적 있다. 아, 그의 저서는 아니다. 최 교수가 서문을 쓰고 박상훈 박사가 번역한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이다. 이 책을 받은 이들은 안희정, 손학규, 정동영 등인데 다들 읽어봤을까 싶다.

‘마키아밸리’와 ‘군주론’ 모두 친숙한 단어들인데 실상 그 내용을 알진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고등학교 정치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한두줄 정도로 훑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냥 모른다고 보는 게 편할 거다.

처음 손에 잡은 <군주론>은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 속에 나오는 고유명사들이 익숙지 않아 읽는 데 애를 먹었다. 중세 유럽의 역사를 자세히 다루고 그 안에서 정복하고 통치하는 군주들의 사례가 풍부하게 나오는데, 세계사를 한번 짚어보고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나갈 수록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그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바는 꽤 명료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번엔 최장집 교수가 쓴 서문의 내용 중 <군주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문’이라고 하지만 꽤 양이 많다. <군주론>의 최장집 해설편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본편과 같이 읽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군주론> 21장에서는 “…실천적 이성이란 바로 그런 불편함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그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을 최선인 것으로 간주해 선택하는 것에 있다”라고 권고한다. 정치에서 선택이란 두개의 선 가운데 차선을 발견하는 것이라기보다 두개의 악 가운데 차악을 발견하는 것인 경우가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강론>에서 이 문제를 체제 선택의 사례를 통해 다시 제기하고 있다. 세상만사는 인간의 의지와 이성에 의해 창출되기보다 ‘불가피함’에 의해 인간의 통제 범위 밖에서 움직일 때가 많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면서 행위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부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폐해가 가장 적은 대안들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런 기준으로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그 사례로 베네치아·스파르타·로마를 비교한다.

(마키아벨리의) 결과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주장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실천적으로 공리주의적인 기준을 통해 행위의 근거를 풍부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적 의무론에 결박되어 있던 기존의 경직된 정치 이론에 대응하려 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공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정이든 공화정이든, 다시 말해 정치체제의 유형이 어떠하든 민중의 역할이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온다는 점은 두 텍스트 모두에 공통적이다. 수를 권력 자원으로 하고 다수 인구를 점하는 민중의 정치 참여,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은 정치적 역동성의 중심적 동력이 된다. 민중을 적으로 돌릴 때 통치자의 지배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노베르토 보비오는 정치적 사실주의/현실주의를 두 차원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사이의 대립적 구분으로, 이를 통해 유토피아적 모험주의와 도피주의를 질책하고 인간의 완벽함과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둘째는 사실적인 것과 겉으로 보이는 것을 대립시킴으로써 권력의 숨은 측면 즉 가면을 벗기고 현상 유지를 탈신비화 시켰다. 현실주의 또는 사실주의는 영어 realism을 우리 말로 옮긴 것인데, 현실 대 이상이라는 첫번째 구분에서는 ‘현실주의’에 가까운 반면, 두번째의 사실적인 것과 표상된 것 또는 나타나 보이는 것 간의 구분에서는 ‘사실주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마키아벨리는 두 차원 모두에서 현실주의자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헌정사에서 “높은 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고 낮은 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풍경 화가에 자신을 비유한다.

(저자의 말) 드라마 <군주론>은 화자인 마키아벨리가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정치를 하면 좋은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 나가는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공직에서 쫓겨난 자신이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희망을 넌지시, 그러나 강렬하게 내비친다.

결국 메디치 가문의 유력자 가운데 아무도 <군주론>에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공직에 복귀하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마키아벨리 역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의미있는 담론이 되길… ‘중앙 미디어 콘퍼런스’ 중에서

작년에 제가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가보니 중국이 우리보다 2년 정도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무려 2년입니다. 중국에서는 지금 이 시장은 전 중국이 폭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마사지를 받는 플랫폼이라고 하면 우리는 마사지를 호출하고 연결해주는 것을 생각할텐데 중국은 차원이 다릅니다. 마사지와 관련된 산업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마사지사를 고용하고 퀄리티를 높이고 연결하고 피드백을 받아서 또 퀄리티를 높이고 이런 식의 과정이 전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거대자본이 들어가고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보다 2년이 앞서서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조짐을 읽으면 항상 기회가 먼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기회보다 공포감이 먼너 느껴지는 것은 처음입니다. 죽어라고 뛰고 있는데 차가 휙 지나가고 있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엄청난 해일이 조만간 대한민국을 덮칠거라 생각합니다.
–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만약 아래 질문 4개에 대해서 ‘YES’라고 대답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1) 이 매체가 10년 전 아닌 오늘날 미디어의 소비 행태를 잘 소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나?
(2) 이 매체들이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고, 동시에 우수한 품질의 특별한 콘텐트를 가지고 있나? 혹은 틈새 콘텐트를 제공하고 있나?
(3) 매체의 수입원이 다변화되어 있나?
(4) 매체들이 자신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다시 되돌려 받아보고 있는가?
– 데이비드 민킨 아틀라스 옵스큐라 발행인

자세한 기사는 여기

신문사 편집국은 지금까지 ‘내일 아침 신문’이라는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이제 초상화가 아니라 24시간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24시간 중 어느 한 시점에 사진을 찍으면 그게 그냥 내일 신문이 돼야 한다.
– 라주 나리세티 뉴스코프 수석부사장

2010년 우리는 인터랙티브하고도 세련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다. 기고자는 전문가 가운데 글쓰기에 열정있는 사람들로 굉장히 신중하게 선택했다. 포브스닷컴의 1750명 기고자들은 자기 관심분야에서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든다. 콘텐트의 퀄리티가 높아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었다.
– 마이크 펄리스 포브스 CEO

모바일 미디어로 올수록 언론의 가장 기본적 스크린 장치인 게이트키퍼는 모호해집니다. 일선 기자들이 바로 올려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뉴스룸의 미래는 게이트키핑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하느냐에 상당 부분 달려 있습니다. 올드미디어의 정확성과 모바일미디어의 속보성의 조화가 관건입니다.
… 처음에는 일방적인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시대, 싯 백 앤 릴리즈(seat back and release)였습니다. 인터넷과 PC가 들어오면서 허리를 곧추세우게 됐습니다. 다가가고 소통하게 됐습니다. 유저가 된 것입니다. 모바일이 되고서는 곧바로 전송을 해버립니다. 마치 곤파스 태풍 때 많은 청취자가 정보를 전해주었던 것과 같습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네트워크가 되는 것입니다. 홍콩의 식당, 성신여대의 강의실처럼.
– 손석희 JTBC 사장

현재 닛케이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는 1128명입니다. 회사는 총 3016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언론인과 직원은 230명입니다. 전세계 36개 도시를 커버하고 있고, 아시아에는 18개의 사무소가 있습니다. 아시아의 경우 올해 한 해동안 기자의 수가 두 배로 늘었습니다. 닛케이의 현재 중점사항은 아시아의 뉴스를 세계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2년 전 우리는 새로운 온라인 프로젝트인 ‘닛케이 아시안 리뷰’를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영어 미디어는 바로 이 전략을 위한 것입니다. 닛케이 아시안 리뷰는 세계 경제계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시아 경제에 대한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하려 합니다.
– 야마자키 히로시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온라인 편집본부장

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다니··· 허삼관은 울기 시작했다

결혼할 때, 일락이가 방철장의 아들의 머리를 쳤을 때, 임분방이랑 잤을 때, 옥수수죽만 먹을 때, 이락이네 생산대장 대접할 때, 일락이의 병원비를 마련할 때,

허삼관은 위의 상황에서 피를 팔아 돈을 번다. 오늘말로 바꿔 순서대로 하자면, 결혼준비를 위해 거금이 필요할 때, 자식이 사고를 쳤을 때, 불륜을 저지른 후 이를 덮을 때,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아이들의 선생님께 촌지를 드려야 할 때, 자식이 아파 병원비를 마련할 때 정도 되겠다.

누구나 돈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상황이다. 평소 모아놓은 돈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에 급전이 필요하게 된다면, 머리는 어질해지고 마음은 꼬집히듯 아릴 것이다. 심장은 그럴수록 요동하고 혈압은 올라 피를 팔기에 좋은 몸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피를 팔도록 설정해놨는지 모른다.

“여기 볶은 돼지 간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 가져오라구.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

허삼관은 피를 팔고 나서 식당에 가 꼭 이렇게 말한다. 아니, 그는 매혈 선배들로부터 이렇게 배웠다. 피를 판 다음 이렇게 말하는 게 필요했다. 계속 따라 읽어보면 기가 막히게 입게 감긴다. 피를 생산하는 간과 뜨근하면서 알싸한 술 한잔이면 으스스한 몸도 금방 덥혀지리라. 주문할 때 상까지 탕, 탕 친다면 금상첨화다. 하나보단 둘이, 둘보단 셋이 같이 말한다면 더 신이 날 것이다. 가장으로서 피를 한 것에 대해 이 정도 생색은 내야 살아갈 맛이 나지 않겠는가.

이제는 늙어서 자신의 피는 아무도 원하지 않고 가구에나 칠해야 한다니··· 지난 40년 동안 이런 일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피를 못판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매혈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다니······. 집에 무슨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나? 허삼관은 울기 시작했다.

매혈기는 곧 그의 인생기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더이상 자신의 피가 필요없다는 진단을 받은 허삼관은 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운다고 소용이 있을까? 눈물 콧물을 흘리고 땅을 치며 통곡을 하면 그의 피가 다시 젊은이들의 그것처럼 싱싱해질까? 그럴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허삼관을 응원한다. 그의 피는 돈이 되고 자식들의 밥이 되고 다시 그들의 피가 되어 또다른 생명들을 움직일 것이므로. 그는 더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 쓸모없는 피가 됐다면, 그 사실 자체로 허삼관에게는 정말 피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피를 팔아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피를 팔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잖는가? 그의 피를 받은 이들이 이제는 허삼관을 움직이게 할 때다. 그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맘껏 느끼고, 피에 대한 미련은 접으시길.

중국통인 선배에게서 추천받아 읽은 책이었는데 재치있는 스토리 전개가 장난 아니다. 쓱쓱 지나가면서도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찾아보니 위화라는 작가는 중국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란다. <허삼관 매혈기>는 1996년에 나온 책인데, 더 훨씬 전 당시 중국의 어려운 생활상을 옆에서 보며 기록한 르포같기도 하다.

유머가 녹아있는 책이 좋다. 유머와 함께하는 삶은 더더욱 좋다. 이 책은 고민과 유머가 함께 있어 그 맛이 더 깊다.

스타일러스가 왜 필요하냐던 잡스 vs 기울기까지 인식하는 애플 펜슬 선보인 팀 쿡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발표할 때 잡수 형님은 누가 스타일러스를 쓰냐?(Who wants a stylus?) 라고 했다. 당시 스타일러스가 내장된 삼성 햅틱 시리즈를 겨냥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무튼 잡스는 사람의 손가락이 가장 좋은 ‘터치 디바이스’라면서 애플의 뛰어난 멀티터치 등 기술을 선보였다.

그러나 세월이 8년이 흘러 잡스도 저세상 사람이 되고 스마트폰 시장도 포화상태가 됐다. 이번에 아이폰6S와 함께 아이패드 프로를 발표한 팀 쿡은 이제 잡스와 영영 빠이빠이를 할 것 같이 스타일러스를 들고 나왔다. 애플펜슬. 압력 조절은 물론 기울기까지 인식 가능해 실제 필기도구 같은 느낌을 살렸다고 한다. 펜슬 끝이 뾰족해 일반 스타일러스보다 필기감도 좋아 보인다.

팀 쿡 체제로 들어선 애플은 그간 iOS의 변화라든지, 디자인이라든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감성,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CEO 입장에서는 전임자의 그림자가 너무 짙은 걸 우려할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변화를 주어야 자신의 입지가 견고해지므로 일부러 새로운 걸 계속 나타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스타일러스를 필요로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평가도 있다. 점점 스마트 기기가 고급화 되어가는 추세. 이번 패드 프로만 봐도 와콤 태블릿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는데, 한 기기로 이것저것을 다 쓰고 싶어하는 전문가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겠다. 손은 패드에 댄 상태로 스타일러스를 쓰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라고 한다. 최대한 노트에 쓰듯이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 애플도 많이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렇지만 애플이 그간 환호받았던 건 우수한 기술력, 감각적인 디자인 때문만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하지 못했던 걸 해왔고, 한발 아니면 두발 세상을 앞서 트렌드를 주도해 왔던 것이다. 리디자인, 리포메이션, 레볼루션. 이는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력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는데, 그렇기에 CEO이자 리더였던 잡스의 존재감은 다른 어떤 기업들보다 컸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봐, 해봤어?”라고 했던 정주영 느낌이랄까. 팀 쿡의 애플은 아직 그 철학이 미미해보인다.

애플은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까? ⓒ텔레그래프

차변대변 쓰는 가계부 후잉 사용기

조금씩이나마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도 가계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냥 안 써도 됐었겠다고 본다. 관리하고 말고 할 수입이 없었으므로.

아무튼 그래서 가계부를 어떻게 쓸까 하다가 처음 접했던 것은 ‘네이버 가계부’였다. 온 국민이 한번씩은 들어간다는 네이버. 하지만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리고 ‘모바일웹’ 서비스가 중단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 난 (제일 간편한 것 같아서) 모바일웹으로 많이 이용을 했기 때문에 에잇, 옮겨버리자, 결정했다.

두번째 만났던 가계부는 ‘편리한 가계부’ 어플이었다. 나름 유료 어플이기도 하고 리포트도 깔끔하고 간단하게 잘 나와서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건 PC를 사용해 입력하기가 좀 불편했다. PC와 모바일을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가계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왼쪽과 오른쪽을 기입하는 후잉

그러다 만난 게 후잉이다. 후잉은 인터페이스도 간단하고, 모바일웹 서비스도 지원하기에 일단 내 니즈가 충족된 것 같았다. 어플도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차피 나는 잘 안 썼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면서 더 좋은점을 발견했는데, 차변과 대변 기입 방식으로 쓴다는 것. 다행스럽게도 회계원론 수업을 한 학기 들었던 터라 차변대변이 뭔지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 방식이 어떤 점에서 좋은지도 대충 느끼고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내가 갖고 있는 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 돈이 내 자산 안에서 움직이는지 아니면 수입/지출로 들어왔다 나가는지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고, 이 점은 내 수입이 점점 더 늘어난다고 했을 때(강력한 희망사항ㅋ) 큰 장점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가계부 차원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는 게 신기했다. 디지털화가 된 덕에, 차변대변을 기입한 후 쉽게 정리되어 나오는 결과물을 볼 수 있게 된 것일 게다. 후잉 페이지에 들어가 ‘거래입력’란에 위와 같이 항목들을 입력한다. 대변차변 개념이 없다면 쓰기가 어려울 수 있으니 가볍게나마 공부하는 게 좋을 듯 싶다.

다양한 리포트도 제공

후잉은 비교적 상세하고 다양한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는데, 사실 내가 현재 이용하고 있는 리포트는 단순하다. ‘비용수익’ ‘자산부채’ ‘자산변동’ 등 정도. 이 정도만 봐도 아직까진 내가 갖고 있는 자산이 어느 정도로 흘러가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사실 정확히 파악하고 그 안에서 주식투자를 하듯 분석하는 건 또다른 공부가 필요하지만, 일반 이용자들의 입장에선 감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그렇다고 리포트를 매번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나같은 경우 회원등급이 ‘백성’이다. 이외에 높은 등급으론 ‘양반’과 ‘율곡이이’가 있는데, 등급이 오르면 하루에 다양한 리포트를 각각 200회, 1000회 볼 수 있다. 나같은 경우야 30번이면 충분한데, 뭔가 더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 돈을 내고 쓰라는 것이다. 후잉은 여기에 수익 모델을 두고 있다.

유료 결제를 해서 쓰는 사람도…

기사들을 보니 후잉 전체 회원의 80퍼센트 이상이 무료회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20% 정도는 돈을 낸다는 것이다. 아마 여러 명이, 예를 들어, 부부가 가계부를 같이 쓴다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에게는 좀 안 맞아보이지만, 동아리나 소모임 정도에서 자금을 관리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후잉에는 가계부 입력 외에도 자유게시판, 뉴스, 월말결산 등 게시판이 있어 사용자들끼리 의견 공유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가계부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지, 수입 대비 적정 지출은 어느 정도인지 같은, 가계부를 쓰다보면 자연히 드는 궁금증이나 여기에 대한 조언들이 오고 간다.

재밌는 건 ‘월말결산’ 게시판. 여기엔 자신이 어떻게 자산 관리를 했는지 캡처된 리포트들이 올라오는데, 살짝 자기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는 상상도 못할 많은 돈을 번다든지, 식비를 어마어마하게 쓴다든지 등 상식적으로 보기 힘든 내용들이 종종 올라온다. 개인적으로는, 재미로 꾸며내서 쓰는 것들도 개중에 좀 있겠다 싶다. 하지만 뭐 그런 것도 커뮤니티의 묘미고,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 용인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모바일 광고는 어떻게 변할까

애플이 이달 발표하기로 한 iOS9에 ‘콘텐츠 블로커’라는 새로운 기능이 얹혀질 전망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왜 파장이 예상되느냐? 콘텐츠 블로커는 사파리에 뜨는 모든 디스플레이 광고를 차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점점 광고시장이 PC에서 모바일로 옮겨타는 중인데, 모바일에서조차 광고가 막힌다면 광고주들은 어디로 갈 것이며, 매체사는 어떻게 살 것인가?

iOS9은 쉽게 사파리에서 광고를 차단하는 앱을 설치할 수 있는데, 이 앱은 광고, 사용자들의 정보를 모으는 분석툴(구글 애널리틱스 같은), 그리고 여타 마케팅 도구들을 싸그리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이 기사를 참고하면 광고를 차단했을 때 얼마나 로딩이 빨라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PC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지만 모바일에서는, 특히 사파리에서는 체감이 더 큰가 보다.

대부분의 사이트에서 로딩시간이 많이 줄었다. 광고가 뜰 때 로딩시간이 4~16초 정도까지 걸렸다면, 광고가 차단됐을 경우 아무리 길게 잡아도 4초다. 1초도 안 걸리는 사이트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앱 하나 더 깔더라도 그게 더 이익이다. TNW 뉴스에서 만든 아래 이미지들을 더 보자.

블룸버그 사이트. 오른쪽이 광고를 차단했을 때.
버지 사이트.

콘텐츠 블로커를 알고 있는 사용자라면, 그 사람이 매우 느긋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 정도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차단앱을 깔지 않을까? 좀 더 쾌적하게 인터넷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기술이 더 강화되고 입소문이 퍼지면 광고주들은 정말 뭐 되는 거 한순간일 듯.

이렇게 되면 구글도 막심한 손해를 입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구글 수익의 대부분이 광고에서부터 나온다고 들었는데, 비록 유튜브나 검색 광고를 빼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글도 광고 시스템을 개편하려고 할 것이고. 한 기술이 나오니 또다른 기술이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이 생태계는 참, 엎치락 뒤치락하는 프리미어리그 같달까.

그런데 웃긴 건 구글도 이달 1일부터 플래시 광고를 차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플래시는 전력소모가 심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모바일 구글 브라우저에서 스탑된 바 있는데, 이제는 광고에 플래시를 안 받겠다는 것이다. 아마존도 마찬가지. 아마존은 구글이나 애플이 플래시를 차단하니 여기에 따른다고. 자연히 다른 기업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한때 각광받았던 플래시도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이제 한물 가는 거 보면 인생무상이 느껴지면서도 앞으로 또 어떤 기술들이 나와야 하나 싶다. 광고 시장도 많이 변할 것이다. 단순히 배너를 띄우는 광고 마케팅은 이제 간당간당해 보인다. 현재 네이티브 애드가 어느 정도 대안으로 나와있지만, 아직 갸우뚱하다. 하지만 광고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같다. 광고가 재미와 정보를 담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스토리와 시사적인 맥락도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막상 애플이 새로운 iOS를 발표하면서부터 업계에서는 비상이 떨어질텐데, 해답이 묘연한 여기도 단지 눈만 꿈벅꿈벅 할 뿐이다.

비디오 이야기: 버즈피드와 피키픽처스

대부분이 인정하듯 버즈피드의 비디오는 히트를 치는 중이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버즈피드 비디오’의 영상들을 보면 대부분 수백만 명이 시청했고, 수천~수만의 ‘좋아요’가 눌린다. 이들의 전략을 다 파악할 순 없겠지만, 요즘은 많은 부분 어떤 화제에 대해 사람이 어떠한 견해를 갖는지를 종합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가령,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처음 성관계를 가졌을 때’ 등. 이밖에도 치즈가 듬뿍 들어간 안주 레시피를 보여준다든지, 남자들이 핫한 게이 웨어를 입는다든지, 자극적이어서 눈길이 안 갈 수 없는 영상들도 올라온다. 인기가 좋다.

버즈피드 비디오에 대한 나의 견해는 사실, 처음 그들을 접했을 때와 지금과 변함이 없다. 그건 바로 ‘별로 재미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데도 나 혼자 열광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분석해봤지만 명쾌한 답이 나오진 않았다. 문화적 차이일까, 아니면 그들의 비디오가 너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많은 팔로워들이 비디오를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거다. 버즈피드는 그들의 콘텐츠를 수용자의 입맛에 딱 맞도록 분석-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버즈피드가 점점 온라인 SNS 세계에서 유명세를 떨치다 보니, 우리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콘텐츠들이 많이 생성되는 것 같다. 국내 페북 계정에서 버즈피드류의 비디오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비록 아직까지는 조잡한 수준이지만 점점 발전하고 있다. (버즈피드의 영상도 그렇게 고퀄은 아니지만 고퀄과 저퀄의 그 중간을 간당간당하게 오가며 대중들의 ‘가벼운’ 반응들을 열심히 수집 중이다.) 그러던 중 어제 ‘피키픽처스’라는 계정을 팔로우하게 됐다. 피키캐스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왜 몰랐었는지 의아하지만, 암튼 피키픽처스는 만들어진지 좀 된 것 같다. 기사를 보면 유튜브에서는 많이 알려진 것 같다. 페이스북 계정은 8/31 현재 13,448명의 팔로워를 보유 중인데 아직 영향력이 그렇게 커보이진 않는다. 페북 계정이 독립한 데 반해, 유튜브에선 피키캐스트 계정으로 비디오가 올라온다. 계정 독립과 영향력 증대 사이에서 아직 고민 중이지 않을까 한다.

아직은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난 피키픽처스가 하나의 비디오 플랫폼으로 성장하리라 예상이 된다. 일단 옐로모바일로부터 든든한 총알들을 지원받았으니 제작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다. 간간이 유명 연예인들이 비디오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비디오는 무겁지도 아주 가볍지도 않다. 버즈피드 비디오가 고퀄과 저퀄 사이를 줄타기하듯 피키픽처스의 비디오도 대략 그런 느낌이다.

어제는 두 래퍼가 나와 페이스북과 싸이월드가 마치 랩배틀을 하는 듯한 영상이 페이스북에 많이 공유됐다. 엠넷의 언프리티랩스타에 나왔던 애들이라던데, 사실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피키픽처스의 영상은 오글거릴 것이란 예상을 깨고 꽤 훌륭했다. 랩 실력도 수준급이었거니와 가사도 꽤 학문적이며 시사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애들의 말싸움이 아닌, 미디어에 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진지한 고찰과 랩의 꽤 괜찮은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아, 이런 그림도 나올 수 있구나,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아주 좋은 반응들을 받으며 페이스북에 계속 회자됐다.

앞에서 말했듯 피키픽처스의 팔로워 숫자는 13,00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비디오가 하나씩, 그리고 또 하나씩 페이스북에서 공유되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의 계정 자체를 팔로우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경험상 그런 식으로 페이지를 키워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잘 만들어놓은 영상도 차곡이 쌓여있다. 지금은 미미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지 상상이 된다.

‘우주의 얕은 지식’을 과감히 전한다는 피키캐스트가 움짤을 넘어 영상 콘텐츠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 같아, 비슷한 업종의 있는 사람으로서 경계감이 우선 든다. 그들은 또 얼마나 창의적으로 성장할 것이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인가. 비록 언론사와는 결이 다르지만, 사람들 입에 회자될수록 좋다는 건 우리나 그들이나 다름이 없다. 사실 그들이 앞서는 전략적 포인트는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 중 하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콘텐츠를 충분히 쌓아놓는다는 것이다. 그게 제일 두려우면서도 부럽다. 총알이 지원되는 한 충분히 콘텐츠를 축적하는 것은 동시에 노하우를 모으는 것이며 맷집을 기르는 것인 까닭이다.

에버노트 이메일 계정으로 노트 만들기

에버노트에 가입하면 각 사용자에게 에버노트 메일이 제공된다.

에버노트 ‘계정정보’란에 들어가보면 위와 같이 @m.evernote.com이 붙는 계정이 생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내 이메일주소는 아이디뒤에 .2b788인가 아무튼 숫자와 문자가 여러개 더 붙어있었다. 그런데 에버노트 ‘고객지원’에 들어가 담당자와 영어 채팅을 한 결과 뒤에 있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깔끔하게 치워졌다. 나는 그에게 “Thank you very much, you’re very kind”라고 찬사를 보냈다.

에버노트의 고객지원 중 있는 채팅 기능.
영문으로만 가능한 채팅이지만 저쪽에서 개떡같은 내 말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다시 돌아와서, 메일을 보내 노트를 만들어보자. 간단하다.

위와 같이 받는 사람에 에버노트 메일주소를 써서 보내면 된다. 자신의 에버노트 메일주소를 미리 등록해 놓으면 사용하기 편하다. 제목은 노트제목으로, 메일 내용은 노트의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메일을 보낸 후 에버노트에서 동기화 버튼을 누르면 메일이 노트로 생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팁을 하나 더 주자면, 위 사진에서 메일 제목을 유심히 보자. 제목에 @과 #이 들어갔다. @뒤에 현재 자신의 에버노트에 있는 노트북 이름을, #뒤에 사용 중인 태그를 추가하면, 메일이 노트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노트북 안으로, 해당 태그를 갖고 들어가게 된다. 아래와 같다. 짜잔.

만약 @과 #뒤에 내가 사용하고 있지 않은 노트북 이름과 태그를 붙이면 어떻게 될까?

실험을 해보니 그냥 기본 노트북으로 들어가고 태그도 추가되지 않았다. 단지 제목에 남아있을 뿐이다. 에버노트 메일 주소로 노트북과 태그까지 사용하려면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것을 입력해야 자동 분류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메일로 노트를 생성하는 건 여러 가지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업무상 메일을 보낼 때 그 내용을 에버노트에 저장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에버노트 이메일 주소를 참조(또는 숨은 참조)로 같이 보내면 된다. 또는 에버노트가 깔리지 않은 친구 스마트 기기로 순간 떠오른 멋진 아이디어를 내 에버노트에 넣고 싶을 때, 어디에나 깔려있는 메일 앱을 사용할 수 있다.

지메일 등 좋은 메일 솔루션이 현대 커뮤니케이션 능률을 올리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메일과 연동되는 에버노트의 기능은 꽤 쓸만하다.


더보기: 에버노트에서 한글로 검색 잘 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