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데브스’를 본 건 ‘데브스’를 보기로 돼있었기 때문

결정론이냐 의지론이냐, 다중우주냐 단일우주냐,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이런 골치아픈 생각을 하고 싶진 않다면 ‘데브스(Devs)’는 비추천이다. 그런데 IT쪽에 관심이 많으면서 관련된 철학적인 고민도 하는 걸 즐긴다면 제법 볼 만 하다.

‘데브스’는 왓챠 익스클루시브로 나온 미드. 다 보고 나서 검색해보니 훌루에서 서비스한 작품이라고 한다. 시즌2를 생각하고 만든 것 같진 않다. 8개의 에피소드에서 모든 스토리가 일단락된다.

‘데브스’를 보면서 몇가지 포인트를 꼽아봤다.

1 인문학적, 철학적 SF

호불호를 많이 탄다. 이러한 부류를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슷한 작품으로는 ‘컨택트(2016)’가 떠오른다. 외계 생명체가 와서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는 시종 무겁고 진지한 영화였다. ‘인터스텔라’는 그나마 재미적인 요소가 많은 편. 그래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면에서 비슷하다고 본다.

데브스에선 다중 우주 개념. 결정론. 양자역학 등 여러 개념들이 나온다. 이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간략하게만 알고 있다면? 그건 괜찮다. 대충 넘겨짚으면서 볼만 하다.

그럼 고민거리를 충분히 던져주느냐? 충분하진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다중 우주, 결정론 등 논의가 좀 뻔하기 때문. 레퍼토리들이 비슷한데, ‘데브스’도 그런 레퍼토리에서 자유롭진 않다. 이런 류의 작품을 많이 봤다면 되게 비슷비슷하다고 느낄 거다.

왓챠피디아에 있었던 한줄 리뷰

2 그래도 명쾌한 결말

개인적으론 ‘데브스’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속시원한 답을 주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결론은 있다. 어떻게 보면 회피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하게는 얘기 하지 않겠다.

처음엔 결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좀 시간이 지나고 첫 에피소드부터 찬찬히 기억해나가다보면 결말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주인공의 선택에 공감이 간다. 어떤 의미에선 ‘데브스’는 반종교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작품이 영혼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다고 봤다.

3 양자 컴퓨팅

데브스가 데브스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양자 컴퓨터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방대한 계산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아니 빠르게 한다는 말도 부족한 듯.

이에 대한 개념은 과학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아래 영상이 좀 도움이 될 거 같다. (자막 켜고 보면 된다)

4 등장인물들이 매력적

주인공들에 대한 혹평들이 많던데 나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특히 여주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 다들 아니라고ㅋㅋㅋ…

그 외에도 데브스의 주인 포레스트와 기술자 케이티, 꼬맹이 린든, 경호원인 켄튼, 한국계 배우라는 제이미도 다 괜찮았다. 인물들 각각이 독특한 인상들을 준다.

5 사운드가 매력적

사운드에 대해선 호불호 이런거 없이 다들 좋았다고. 나도 마찬가지다. 첫편부터 몰입감 쩔게 만드는 사운드가 등장하는데 막 긴장 된다. 좀 시끄럽기도 하다. 그런데 분위기를 압도한다.

연출, 영상미, 등장인물 등 작품의 각 요소들과 비교했을 때 사운드가 이렇게까지 영향이 큰가 할 정도의 비중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느낌도 풍긴다.

각 에피소드마다 그런 긴장감을 조성하는 사운드는 다 달랐다. 이러한 사운드는 어마야의 여자아이 동상과 맞물려 굉장한 분위기를 창출하는데ㅋㅋ 이건 직접 봐야 이해가 될 듯.

평점 ★★★☆☆

미드 추천: 멘탈 천재 캐리가 캐리한 홈랜드(HOMELAND)

지인의 추천으로 미드 ‘홈랜드’를 정주행했다. 현재 시즌 7까지 나왔으며 넷플릭스에서도 전편을 다 볼 수 있다. 마지막인 시즌 8은 2월 오픈된다고 한다.

홈랜드를 추천한 지인은 미국인들을 섹스애니멀이라고 했다.ㅋㅋㅋㅋㅋ 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다가도 눈만 맞으면 갑자기!(…) 홈랜드를 보면 그 표현이 굉장히 공감된다. 실제로 그런 장면들이 꽤 여럿 나온다. (아래부터 스포가 조금씩 포함됨)

동물적인 섹스가 미국인들의 보편적인 문화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도 홈랜드의 주인공이 정신 장애를 앓고 있어서 그런 장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아닌가 한다. 캐리 매시선. CIA요원으로 이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이며, ‘양극성 장애’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드라마 주인공이 으레 그렇듯이)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 중동 지역 지부장도 하고, 퇴사 후에도 이곳저곳에서 부르는 인물인데, 아마도 이 양극성 장애가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캐리는 평상시에 약을 먹으며 정신병이 발현되는 것을 지체/유지시킨다. 일정 기간 약을 끊으면 말 그대로 미쳐버린다. 굉장히 예민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며 횡설수설하고 환각과 환청도 경험한다. 이런 증상이 발현되지 않도록 약을 먹을 것을 항상 조언받고, 스스로도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캐리다. 그렇지만 드라마가 전개되고 위기에 빠지는 순간이 오게 되면 캐리는 일부러 약을 끊는다. 미치기 바로 직전까지 양극성 장애의 발현을 이용해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캐리는 홈랜드를 말그대로 하드캐리하는 캐릭터다. 대부분의 문제는 캐리를 통해 해결이 된다. 그렇지만 다른 드라마와 다른 점은, 캐라가 동시에 발암 유발 캐릭터라는 거다. 캐리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중간중간 짜증이 나서 나도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왜 갑자기 나서서 일을 크게 만들지?’ ‘법적으로 풀어도 될 일을 왜 저렇게 선을 넘으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떠오른다ㅋㅋㅋ 양극성 장애는 정말 캐리를 나타내는데 적합한 말인 것 같다. 그녀는 히어로면서 최고 악당이다ㅋㅋ 특히 딸내미를 데리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걸 보면 정말….ㄷㄷㄷ

캐리의 저 다양한 표정들(…)

시즌이 일곱개가 지나가면서 드라마의 지역적 무대도 계속해서 바뀐다. 미국에서 중동으로, 유럽으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시즌1~3은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다. 중동 테러단체에 잡혔다가 극적으로 풀려나온 해병대 군인이 테러단체의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즌 4~5는 각각 중동과 유럽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으며 6~7은 하나의 이야기로 미국을 무대로 한다. 곧 오픈될 시즌 8에서는 6~7을 마무리할 것 같다.

어떤 드라마라도 그렇듯 모든 시즌이 골고루 재밌는 건 아니다. 나같은 경우 시즌3까지 점점 재밌어지다 4에서 살짝 주춤했으며 5를 거치면서 다시 점점 재밌어졌다. 각각의 시즌의 성격이 다르고, 등장하는 인물들에도 조금씩 변화를 준다. 시즌을 거치면서도 고정인 하드캐리 캐릭터와 변주되는 조연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갤탭으로 그린 시즌별 주관적 흥미도ㅋㅋ

홈랜드의 매력은 반전에 반전, 다시 그 반전에 또 반전이 나온다는 거다. 미드를 계속해서 봐오다보니 반전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홈랜드는 거기서도 몇번을 더 비틀어버리니 반전 예상은 그만하고 맘편히 즐기는 게 낫다 싶었다.

내가 느끼기에 또다른 홈랜드의 매력은 이야기 전개의 속도가 매우 적당하다는 것이다. 이건 사람마다 느끼는 속도가 다를테니 다른 드라마와 비교하는 게 이해가 쉬울 것 같다. FBI의 프로파일러를 다루는 ‘블랙리스트’를 예로 들면, 이야기 전개가 매우 빠른 편이다. 갑자기 사건이 터지더니 이와 관련된 범인이 어느샌가 등장하고 그 사건이 금세 마무리되더니 또다른 사건이 터지는 식이다. ‘지정생존자’도 비슷한 느낌이다. 극중 인물들은 해야할 말만 탁탁 하고 넘어간다. (대사 속도도 비교적 빠른 편). 그만큼 긴박성을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지치기가 쉽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너무 이야기 전개가 안 돼서 늘어지는 경우도 많다. 나한텐 ‘마인드 헌터’나 ‘베터 콜 사울’이 그런 류였는데,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가 잘 안 되니 지루하다. 폰으로 보다가 졸아서 얼굴 위로 폰을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

내 생각에 대부분 잘 만든 드라마는 이 속도의 조절을 매우 예민하게 하는 것 같다. 긴장되는 장면은 미친 듯이 몰아치다가, 한 단락 마무리 되면 숨쉴 틈을 준다. 홈랜드는 그러한 밀당을 정말 잘한다. 그러한 밀당을 잘 하려면 촘촘한 연출은 필수다. 홈랜드는 쓸데없는 장면 없이, 던진 떡밥들은 성실하게 회수한다.

캐리의 절친이자 멘토이자 지원군이자 아빠 역할이자 상사인 사울

마지막으로 좋은 점을 하나 더 꼽자면, 매력있는 캐릭터들이 다수 나온다는 거다. 주인공인 캐리는 물론, 캐리의 곁에서 항상 캐리를 지원하는 사울, 특별한 인연이 될 뻔한 피터, 브로디와 그 가족, 캐리의 언니, 딸 프레니, 독일 요원들, 그밖의 CIA 요원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각각의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연출과 작가의 내공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누가 물어보면, 나는 홈랜드를 베스트 미드로 세손가락 안에 꼽겠다. 여운도 많이 남고, 언제 어떤 에피소드를 재생하더라도 생경한 느낌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넷플릭스 드라마 재밌게 봤던 거 추천 5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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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가서도 틈틈이 본(…) 넷플릭스 최고의 미드! 천재성은 있지만 화학교사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 월터가 말기암 판정이 계기가 돼 미친 듯이 마약을 만드는 이야기다. 미친 듯이 마약을 만들면서 카르텔도 접수하고 세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떼돈을 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삶이 행복한다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닐 것이다. 내가 살려면 경쟁자들을 제거해야 하고, 이리저리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점점 더 일은 꼬여간다. 인생의 어느 한 순간, 나도 특정한 선택을 해 저런 식으로 인생이 흘러간다고 상상하면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숨이 턱 막힐 것 같다. 범죄에는 희열이 따라올 수 있지만 그의 결국은?

평범한 가장이 최대 마약 제조상이 되는 이 드라마는 결코 드라마틱하지 않다. 사막 먼지 속에 뒹굴고 약품이 폭발하고 피 터지게 맞고 죽을 뻔하기를 여러번. 그러면서도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운전도 알려주고 학교에선 아이들도 가르쳐야 한다. 이토록 현실감 있게 연출된 드라마는 못 본 것 같다. 군데군데 잘 박혀있는 복선과 단단한 스토리라인, 알싸한 반전들은 덤이다.


너의 모든 것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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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의 목소리가 좋았다. 유난히도 많은 주인공 조의 독백.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의 감정과 언어들. 하지만 그는 사이코패스이자 스토커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 휴대폰과 속옷을 훔치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되고, 급기야 사람을 감금하고 살인도 저지른다. 그럼에도 그는 떳떳하다. 자신은 비극의 주인공이며, 다른 이들이 어떻게 되더라도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금사빠다(…)

어마무시한 범죄와 대비되는 감성적인 화면, 실체를 알고나면 끔찍해 소름이 돋는 문학적인 대사들, 지루할 때쯤 툭툭 등장하는 유머와 뒤통수 때리듯이 나오는 반전이 잘 어우러졌다.


하우스 오브 카드 (House of Cards)

netflix house of cards

마치 카드로 지은 집처럼 엉성하고 부실한, 그리고 실상은 빈 껍데기 뿐인 정치 현실을 꼬집는 드라마. 이걸 보면서 인간이 이토록 교묘하고 치사하며 더러운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현실 정치판도 진짜 저럴까?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모두 천재임에 틀림없다. 말 한마디에 몇수를 건너뛰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전체 큰 그림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야금야금 해나가야 한다.

회사에서도 종종 그런 사람들을 목격한다. 야망을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을 제끼고 결국은 왕좌에 오르는 이들. 정치는 어디에나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변수와 함께 변주하게 되는 정치의 극단적인 면들을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 있다.


킹덤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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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드래곤와 김은희 작가가 만들었다기에 믿고 본 작품. 기대가 높았어도 괜찮고, 기대를 안 했다면 더더욱 흥미진진할 것 같다. 조선시대와 좀비라는 컨셉이 미스매치될 것 같기도 한데, ‘역병’이라는 키워드로 잘 엮었다. 단순한 역병 스토리는 아니다. 그 안에 권력의 야욕, 민생의 고통, 인간의 본성이 들어있다. 스토리는 짱짱한 듯!

좀비로 출연하는 조연들 포함, 배우들의 연기도(일부 연기 논란이 있긴 하지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딱히 좀비물을 선호하진 않는데, 스토리와 잘 어우러져 크게 거부감 없이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시즌2를 고려해 찍은 거라 결말이 좀 아쉽긴 하다. 뭔가 거대한 예고편을 본 느낌이랄까. 바꿔서 좋게 말하면, 시즌2를 몹시 기대하게 된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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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헤나, 헤나 베이커” 카세트에서 들려오는 이 독백은 주인공인 헤나 베이커가 남긴 것이다. 헤나는 삶의 지속과 중단 중에 후자를 택한 여고생. 전학 온 학교에서 성희롱과 왕따를 당하다가 급기야 스스로 삶을 끝낸다. 그 이유 13가지가 카세트에 담겼고,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카세트가 배달됐다. 내가 헤나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돼있다면? 내 얘기가 거기에 담겼고, 나와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이 똑같이 테이프를 듣고 있는 거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따뜻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교훈적, 계몽적 주제(…)

하지만 드라마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다. 어둡고 먹먹하다. 하지만 모든 에피소드를 봐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한 인생이 받은 상처들, 책임이 가볍지 않은 가해자들, 방관했던 주변인들, 결코 100% 피해자라고만 볼 수 없는 헤나의 잘못들, 그리고 그 안의 오해들. 두통이 올 때 마시는 쓰디쓴 에스프레소처럼, 고통스러워도 끊을 수 없는 매력이 드라마 속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