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주인공과 미친 스토리… 넷플릭스 ‘너의 모든 것(You)’

완결된 시즌4 공개!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모든 것(You)’의 새로운 파트가 나왔다. 시즌4는 진작에 풀렸지만, 이번엔 파트1과 파트2로 나눠서 나왔다.

전체 에피소드를 푸는 추세는 이제 유행이 지났나보다. 시즌을 통째로 풀었던 넷플릭스도 이제 다른 OTT의 전략을 따라한다. 애플TV처럼 한 주에 한 편씩 풀기도 하고, 디즈니 플러스처럼 시즌을 파트로 나눠 풀기도 하는데, 이 또한 계속 바뀌어 갈 것이다. 이 모든 게 철저한 신규 구독 및 구독 유지를 높이기 위해서!

Crazy and crazy

이 드라마는 정말 여러 의미로 미친 것 같다. 이전에도 넷플릭스 추천 5 드라마에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내가 재밌게 본 베스트 5 안에 드는 것 같다.

주인공은 진짜 미친 놈이다. 흔히 싸이코라 부르는. 그런데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 살인은 본인의 논리와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정당화된다. 드러나선 안 되는 일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이 위협되는 걸 막기 위해 등 이유는 여러 가지.

여주인공들도 여러 의미로 정상은 아니다. 사실 시즌1에서의 여주만 비교적 정상이었지, 그 외의 여주들 또한 정상 범주를 한참 벗어난다. 어쩌면 주인공은 그러한 여자들에게만 끌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시즌4를 보던 중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한다.

어쩌다 이게 내 패턴이 됐지?

여자한테 빠져든다.

함께 시체를 옮긴다.

웃기긴 한데,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로 손색 없다.

왜 재밌을까?

그리고 시즌이 더해갈수록 새로운 재미 요소가 발견된다. 장소가 바뀌는 재미도 있다. 뉴욕에서 LA로, 그리고 시즌4에선 영국으로까지. 장소가 바뀌니 사람도 싹 바뀌고 전체적인 문화도 달라진다.

이런 재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표현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나무위키에 나온 설명이 무릎을 탁 치게 했다.

시즌 1에서는 뉴요커와 여성들의 가쉽, 가스라이팅이 주요 소재며
시즌2에서는 로스앤젤레스의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의 허영심과 연예인들의 뒷면을 다루고
시즌 3에서는 교외에 거주하는 상류층들의 폐쇄적인 환경과 위선, 소위 PC로 불리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공허함을 다룬다.
시즌 4에서는 아예 영국 귀족층의 타락한 모습을 다루며 그들의 선민의식과 귀족주의를 대놓고 보여준다.

너의 모든 것 – 나무위키

‘너의 모든 것’을 보다 보면 스토리나 캐릭터가 굉장히 노골적이다. 거침 없고, 모호하지 않다. 완전히 이상한 놈들과 변태적인 상황, 한숨 나오는 전개 등등. 단순히 드라마적 재미를 더욱 극적으로 하기 위함도 있겠으나, 현상을 비판하고 패러디한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단순하게’ ‘표면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또한 드라마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 자체에 일종의 뿌듯함도 더해주는 것 같다.

비하인드

그런데 ‘너의 모든 것’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 했었다고 한다.

제작자 세라 갬블은, 2015년에 ‘너의 모든 것’을 들고 쇼타임이라는 미국 케이블 방송사에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그 뒤 넷플릭스에도 두번이나 찾아갔지만 다 실패였다. 미국인들에게도 좀 쇼킹했을까? 그런데 이해되기도 한다. 막상 그림이 나와보니 재밌었겠지만 제작 전엔 절레절레 했을 수도 있다. 살인이 아무렇지 않은 싸이코적인 설정, 그리고 대본을 꽉꽉 채우는 주인공의 독백이 재미없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본다.

여튼 수번의 거절 끝에, 미 케이블 채널 라이프타임이 2017년 제작에 뛰어들었고, 2018년 7월 두번째 시즌까지도 빠르게 만들기로 한다. 넷플릭스는 2018년 12월 시즌2가 릴리즈 되기 전 ‘너의 모든 것’을 넷플릭스로 들여왔다.

지금이야 매우 다양하고 많은 콘텐츠에 돈을 쏟아붓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콘텐츠 투자에 덜 공격적이었단 걸 알 수 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이 눈에 띈 이유

많은 이들이 관심이 없다고 하고, 특히 겨울에 열려 인기가 떨어질 거라고들 해도 역시 월드컵은 월드컵이다. 그 자체로 세계인들의 축제이며 경기가 이어질 수록 재미도 더해진다.

어젠 잉글랜드와 이란의 B조 1차전 시합이 있었다. 잉글랜드의 6:2 대승이었다. 프리미어리그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리그이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썩 좋은 성적을 내오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 팀은 확실히 달랐다. 선수들 개개인도 몸값에 걸맞게 개인 기량이 출중할 뿐더러 조직력도 잘 맞아 보였다. 6골을 넣은 골 폭풍이 전혀 과하지 않은 느낌. 이번 대회에서 주목을 많이 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실력 외에도 이 팀이 주목도가 높아지는 건 다른 이유들도 있어 보였다. 팀 자체에 스토리텔링 요소들이 많다. 이번 경기에만 나온 이야깃거리를 잠깐 정리해보면,

1. 주장 완장

사진 출처: 풋볼 런던

잉글랜드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팀은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One Love’ 주장 완장을 착용할 예정이었다. 카타르는 동성 결혼이 금지돼있는 나라다. 하지만 FIFA에서는 ‘각 팀 주장은 FIFA에서 제공한 완장을 차야 한다’고 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엘로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 직전까지 잉글랜드의 주장 해리 케인이 원 러브 완장을 찰지 말지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결국 케인은 원 러브 완장을 하지 않았다. 벌금을 내야 한다면 했겠으나 경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대신 FIFA가 정한 ‘차별 반대(No discrimination)’ 완장을 찾고 경기에 나섰다.

2. ‘무릎 꿇기’ 퍼포먼스

EPL에선 매 경기 시작 직전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의미로 모든 선수들이 잔디에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 퍼포먼스를 월드컵 경기 전에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왜 카타르에서 이 퍼포먼스가 주목을 받을까? 카타르에서 이주 노동자, 성 소수자 등의 인원이 탄압받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고 하지만, 정치도 스포츠도 우리 생활의 중요한 영역임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의식있는 행동이 개인이 아닌 팀 단위에서 펼쳐진다는 게 멋있다.

사진 출처: Bein Sports

3. 그릴리쉬의 세레모니

잉글랜드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축구 선수 잭 그릴리쉬가 후반 45분 팀의 여섯 번째 골을 널었다. 그릴리쉬는 골 세레모니로 양 팔을 벌려 흐느적거리는 느낌으로 춤을 춰 주목을 받았는데, 이게 사연이 있었다.

그릴리쉬는 월드컵을 앞두고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11살 소년팬을 만났다. 이 팬과의 만남에서 그릴리쉬는 월드컵에서 골을 넣을 경우 소년팬이 원하는 세레머니를 하기로 했고 그 춤이 바로 그것이었다. 스토리를 알고 나니 더 멋있어 보인다.

그릴리쉬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사연이 더 있었다. 그릴리쉬가 4살이었을 때 생후 10개월의 남동생이 죽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형제 중에 장애를 앓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 그릴리쉬는 이 동생에 대한 애정이 정말 크다고 한다.

축구 선수도 한명의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생의 조각들이 얽혀져 월드컵에서도 드러난다. 가슴이 찡한 장면들이다.

사진 출처: 그릴리쉬 인스타그램

내가 ‘데브스’를 본 건 ‘데브스’를 보기로 돼있었기 때문

결정론이냐 의지론이냐, 다중우주냐 단일우주냐,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이런 골치아픈 생각을 하고 싶진 않다면 ‘데브스(Devs)’는 비추천이다. 그런데 IT쪽에 관심이 많으면서 관련된 철학적인 고민도 하는 걸 즐긴다면 제법 볼 만 하다.

‘데브스’는 왓챠 익스클루시브로 나온 미드. 다 보고 나서 검색해보니 훌루에서 서비스한 작품이라고 한다. 시즌2를 생각하고 만든 것 같진 않다. 8개의 에피소드에서 모든 스토리가 일단락된다.

‘데브스’를 보면서 몇가지 포인트를 꼽아봤다.

1 인문학적, 철학적 SF

호불호를 많이 탄다. 이러한 부류를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슷한 작품으로는 ‘컨택트(2016)’가 떠오른다. 외계 생명체가 와서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는 시종 무겁고 진지한 영화였다. ‘인터스텔라’는 그나마 재미적인 요소가 많은 편. 그래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면에서 비슷하다고 본다.

데브스에선 다중 우주 개념. 결정론. 양자역학 등 여러 개념들이 나온다. 이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간략하게만 알고 있다면? 그건 괜찮다. 대충 넘겨짚으면서 볼만 하다.

그럼 고민거리를 충분히 던져주느냐? 충분하진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다중 우주, 결정론 등 논의가 좀 뻔하기 때문. 레퍼토리들이 비슷한데, ‘데브스’도 그런 레퍼토리에서 자유롭진 않다. 이런 류의 작품을 많이 봤다면 되게 비슷비슷하다고 느낄 거다.

왓챠피디아에 있었던 한줄 리뷰

2 그래도 명쾌한 결말

개인적으론 ‘데브스’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속시원한 답을 주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결론은 있다. 어떻게 보면 회피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하게는 얘기 하지 않겠다.

처음엔 결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좀 시간이 지나고 첫 에피소드부터 찬찬히 기억해나가다보면 결말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주인공의 선택에 공감이 간다. 어떤 의미에선 ‘데브스’는 반종교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작품이 영혼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다고 봤다.

3 양자 컴퓨팅

데브스가 데브스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양자 컴퓨터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방대한 계산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아니 빠르게 한다는 말도 부족한 듯.

이에 대한 개념은 과학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아래 영상이 좀 도움이 될 거 같다. (자막 켜고 보면 된다)

4 등장인물들이 매력적

주인공들에 대한 혹평들이 많던데 나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특히 여주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 다들 아니라고ㅋㅋㅋ…

그 외에도 데브스의 주인 포레스트와 기술자 케이티, 꼬맹이 린든, 경호원인 켄튼, 한국계 배우라는 제이미도 다 괜찮았다. 인물들 각각이 독특한 인상들을 준다.

5 사운드가 매력적

사운드에 대해선 호불호 이런거 없이 다들 좋았다고. 나도 마찬가지다. 첫편부터 몰입감 쩔게 만드는 사운드가 등장하는데 막 긴장 된다. 좀 시끄럽기도 하다. 그런데 분위기를 압도한다.

연출, 영상미, 등장인물 등 작품의 각 요소들과 비교했을 때 사운드가 이렇게까지 영향이 큰가 할 정도의 비중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느낌도 풍긴다.

각 에피소드마다 그런 긴장감을 조성하는 사운드는 다 달랐다. 이러한 사운드는 어마야의 여자아이 동상과 맞물려 굉장한 분위기를 창출하는데ㅋㅋ 이건 직접 봐야 이해가 될 듯.

평점 ★★★☆☆

테슬라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테슬라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쓴 후기. 7가지 단상들을 적어놨다. 길게 근무했던 것 같지는 않다. 3개월 계약. 그래도 필자는 그간 일하면서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https://benwehrman.com/7-things-i-learned-while-working-at-tesla/

1 테슬라 차는 쩐다(Insanely Fun)

테슬라를 타보기 전엔 차를 갖고 싶단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모델3를 타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전기차라면 또 모르겠다(but I could totally become an EV person). 테슬라는 차가 아니라 외계인 우주선 수준이다. 그러면서 소개한 영상.

2 테슬라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다

테슬라는 단순히 차를 만드는 곳이 아니다. 안티 화석 연료 회사다. 테슬라는 기존의 화석 연료 인더스트리를 파괴해가고 있다. 대신 이를 재생가능한 것들로 바꿔내가고 있다.

3 모든 직원은 탑레벨

내가 속했던 팀의 스쿼드는 그 어떤 팀과도 비교불가능한 매우 놀라운 수준. 서로 잘 대해주고 스마트하고 오픈마인드를 갖고 있고 적극적이며 열정적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일론 머스크의 관리 하게 된 것이다. 일론은 이러한 성향의 직원에게 프리미엄을 주는 관리 체계를 만들어냈다. 테슬라 팀은 전세계에서 짱강한 팀이다.

4 워크 환경도 짱이다

종종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곤 하는데, 항상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다. 뭘 하는지 보면 주로 주가에 대해서 말하거나(아마 테슬라 주가), 테슬라가 람보르기니나 페라리를 드래그레이스(drag race)에서 발라버리는 영상을 본다. 점심시간엔? 똑같다. 일할 시간이 아니어도 그들은 항상 테슬라에 대해 얘기한다. 왜냐고? 게임체인저가 된 회사의 일원이니까. 테슬라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와 동기를 부여한다.

5 모든 고객이 세일즈맨이다

테슬라에서 일할 때 테슬라 때문에 신난 고객들을 매일 만났다. 내가 새로운 기능들을 보여줄 때마다 그들의 얼굴은 환해진다. 솔직히, 이런 자동차가 있었나?

테슬라 주인은 그의 친구들, 가족들, 심지어 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에게도 차 자랑을 한다. 빠르고, 안전하고, 멋지고, 어드밴스드하고, 환경보호에 기여하니까. 광고비? 따로 없다. Simply put, it sells itself.

6 전기차 경쟁이 심해진다고? 테슬라는 오히려 환영한다

나도 그렇고 테슬라 직원들도 그렇고, 테슬라 팬들은 모두 전기차 혁명을 주지하고 있다. 또한 화석 연료에 대항할 이 인더스트리에 새로운 참여자들을 환영한다.

일론 머스크는 2014년에 테슬라의 모든 특허를 공개했다. 전기차 시장 자체를 키우려는 목적. 전기차를 파는 건 단순히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거다.

7 테슬라는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

테슬라 티셔츠를 입거나 뱃지를 달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거기서 일해? 일론 머스크의 계획은 뭐야? 등등. 이건 테슬라의 마케팅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테슬라가 뭘 하는지 궁금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에, 어떤 사람들은 환경 지속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에 관심이 많은데, 테슬라는 이 둘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당연히 바이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이거 한번 봐봐. 일론 머스크가 까메오로도 많이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XpE8e6AYmfo

3개월 밖에 일하지 않아서 단순히 뽕에 취해 적은 글일 수도. 그렇지만 테슬라를 상상해보면 다들 비슷한 그림이지 않을까? 이 글이 놀라운 건, 그 상상과 현실이 많이 일치한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재밌게 봤던 거 추천 5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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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가서도 틈틈이 본(…) 넷플릭스 최고의 미드! 천재성은 있지만 화학교사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 월터가 말기암 판정이 계기가 돼 미친 듯이 마약을 만드는 이야기다. 미친 듯이 마약을 만들면서 카르텔도 접수하고 세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떼돈을 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삶이 행복한다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닐 것이다. 내가 살려면 경쟁자들을 제거해야 하고, 이리저리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점점 더 일은 꼬여간다. 인생의 어느 한 순간, 나도 특정한 선택을 해 저런 식으로 인생이 흘러간다고 상상하면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숨이 턱 막힐 것 같다. 범죄에는 희열이 따라올 수 있지만 그의 결국은?

평범한 가장이 최대 마약 제조상이 되는 이 드라마는 결코 드라마틱하지 않다. 사막 먼지 속에 뒹굴고 약품이 폭발하고 피 터지게 맞고 죽을 뻔하기를 여러번. 그러면서도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운전도 알려주고 학교에선 아이들도 가르쳐야 한다. 이토록 현실감 있게 연출된 드라마는 못 본 것 같다. 군데군데 잘 박혀있는 복선과 단단한 스토리라인, 알싸한 반전들은 덤이다.


너의 모든 것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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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의 목소리가 좋았다. 유난히도 많은 주인공 조의 독백.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의 감정과 언어들. 하지만 그는 사이코패스이자 스토커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 휴대폰과 속옷을 훔치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되고, 급기야 사람을 감금하고 살인도 저지른다. 그럼에도 그는 떳떳하다. 자신은 비극의 주인공이며, 다른 이들이 어떻게 되더라도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금사빠다(…)

어마무시한 범죄와 대비되는 감성적인 화면, 실체를 알고나면 끔찍해 소름이 돋는 문학적인 대사들, 지루할 때쯤 툭툭 등장하는 유머와 뒤통수 때리듯이 나오는 반전이 잘 어우러졌다.


하우스 오브 카드 (House of C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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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카드로 지은 집처럼 엉성하고 부실한, 그리고 실상은 빈 껍데기 뿐인 정치 현실을 꼬집는 드라마. 이걸 보면서 인간이 이토록 교묘하고 치사하며 더러운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현실 정치판도 진짜 저럴까?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모두 천재임에 틀림없다. 말 한마디에 몇수를 건너뛰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전체 큰 그림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야금야금 해나가야 한다.

회사에서도 종종 그런 사람들을 목격한다. 야망을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을 제끼고 결국은 왕좌에 오르는 이들. 정치는 어디에나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변수와 함께 변주하게 되는 정치의 극단적인 면들을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 있다.


킹덤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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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드래곤와 김은희 작가가 만들었다기에 믿고 본 작품. 기대가 높았어도 괜찮고, 기대를 안 했다면 더더욱 흥미진진할 것 같다. 조선시대와 좀비라는 컨셉이 미스매치될 것 같기도 한데, ‘역병’이라는 키워드로 잘 엮었다. 단순한 역병 스토리는 아니다. 그 안에 권력의 야욕, 민생의 고통, 인간의 본성이 들어있다. 스토리는 짱짱한 듯!

좀비로 출연하는 조연들 포함, 배우들의 연기도(일부 연기 논란이 있긴 하지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딱히 좀비물을 선호하진 않는데, 스토리와 잘 어우러져 크게 거부감 없이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시즌2를 고려해 찍은 거라 결말이 좀 아쉽긴 하다. 뭔가 거대한 예고편을 본 느낌이랄까. 바꿔서 좋게 말하면, 시즌2를 몹시 기대하게 된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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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헤나, 헤나 베이커” 카세트에서 들려오는 이 독백은 주인공인 헤나 베이커가 남긴 것이다. 헤나는 삶의 지속과 중단 중에 후자를 택한 여고생. 전학 온 학교에서 성희롱과 왕따를 당하다가 급기야 스스로 삶을 끝낸다. 그 이유 13가지가 카세트에 담겼고,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카세트가 배달됐다. 내가 헤나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돼있다면? 내 얘기가 거기에 담겼고, 나와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이 똑같이 테이프를 듣고 있는 거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따뜻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교훈적, 계몽적 주제(…)

하지만 드라마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다. 어둡고 먹먹하다. 하지만 모든 에피소드를 봐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한 인생이 받은 상처들, 책임이 가볍지 않은 가해자들, 방관했던 주변인들, 결코 100% 피해자라고만 볼 수 없는 헤나의 잘못들, 그리고 그 안의 오해들. 두통이 올 때 마시는 쓰디쓴 에스프레소처럼, 고통스러워도 끊을 수 없는 매력이 드라마 속에 담겨 있다.

본격 밥벌이 리뷰: 책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직업을 가진다면, 어렸을 적 기준에선 은행원은 생각도 안 해봤다. 그간 꿈의 궤적을 살펴보면 축구선수-과학자-소설가-물리학자-천체물리학자-검사-기자였는데, 한 사람 인생치고는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은행원은 없었다. 단순한 회사원의 하나로만 치부했던 것 같다.

이 사회에 정말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생겨나고 또 없어지는 걸 알았을 무렵, 선배들이 그리고 일찍 졸업한 동기들이 은행으로 입사하는 걸 봤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정확히 그들이 어떤 일 하는지는 관심없었다. 고객 응대 정도만 하는 줄 알았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기 위해 몇번 은행을 들락날락거리니 그제서야 행원이 매력있는 직업처엄 느껴졌다. 이런 권력을 가진 사람들… 아무리 떼쓰고 어르고 달래도 내 대출 한도는 정해져있고, 그들은 매우 스트릭트하게 그러면서도 동정을 느낀 듯한 표정으로 “우리가 다 해드리고 싶지만 정해진 룰이 있기 때문에 따라야 해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이렇게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 뒤에 부지점장이 있고 지점에 따라선 지점장이 있다는 얘기. 이 책을 보니 좀 알겠더라.

지점장은 온갖 돈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인 듯 하다.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은>의 저자도 그걸 장점으로 꼽았다. 의사는 병자들만 만나고 경찰들은 범죄자와만 만난다면, 행원은 잘 나가는 사람들과 긴밀하게 어울릴 수 있다. 돈으로 엮인 관계가 피상적이긴 하지만 서로에겐 이와 잇몸같이 꼭 필요한 존재니까. 그런 삶을 동경한다면 행원도 좋겠다 싶다.

일의 본질은 영업이란 생각도 책을 보면서 들었다.
어느 회사나 그럴 거다. 언론사도 그렇다. 그래서 차장 부장 올라갈수록 영업을 뛰게 된다. 경영의 중심으로 차츰차츰 들어오는 것이다.
행원도 마찬가지. 부지점장, 점장 올라갈수록 큰손 고객들을 만나 자기쪽으로 끌어와야 된다.

영업을 위한 관계를 맺는 데 창의성이 중요한 것 같다. 외향적 성격도 장점이 되지만 점점 직장 생활을 할수록 거기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활발해도 싸가지 없으면, 적극적이어도 맨날 똑같은 패턴으로 그 나물에 그 밥이면 상대하는 사람 별로 마음 안 끌린다. 머리를 써서 어떻게든 남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기발하게 하는 게 포인트. 저자가 그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직장 생활 오래 하려면 점점 개발해야 할 능력이리라. 아마 창업을 하면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사장의 마인드로 직장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가보다. 저자도 말한다. “지점장이 된 것처럼 행동하라”

하지만 이 책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생각은 많지 않다.
읽다보니, 그간 만나왔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내가 너희들을 정말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을 에둘러서 전하기 위해서 책을 쓴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날카롭고 비판적인 어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 참고. 중간중간 감사하다는 말이 얼마나 많던지.

긍정적인 어조로만 꽉 차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 별로였다.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 저자는 실제로 이러한 마인드의 소유자이며 그런 태도로 살아왔을 수도 있다. 그랬기에 지점장에도 오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감정의 미화와 과장이 군데군데 드러나 읽기가 거북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른 류의 밥벌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기엔 괜찮은 책 같다.
아, 저자는 ‘우리은행’ 출신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당에는 가장 고민이 깊은 두 세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고자 애쓰는 청년들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주역에서 밀려나는 베이비부머들이다. 그들 사이에는 40년 세월의 거리가 있는데도 어떤 면에서는 많이 닮았다.

p35

우리도 가칭 ‘베이비부머아카데미’ 같은 것을 만들어 스스로를 새시대를 이끄는 지도세력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어떨까? 우리 힘으로 새로운 의미의 은퇴자 르네상스 운동을 전개하다는 것이다.

p39

우선은 주 거래처인 D항공과의 관계를 전보다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그들이 자랑하는 운동부인 남자배구를 적극적으로 응원하도록 하자. 또한 항공사 직원들과 대화할 때는 반드시 ‘우리 D항공’이라고 호칭하여 친근감을 높이도록 하자.

p53

개성폭포와 그 옆에 있는 사찰을 구경했다. 선죽교와 고려박물관도 들렀다. 가는 곳마다 지팡이 같은 수제품이나 먹을 것들을 팔았는데, 아이스크림은 입에 맞지 않았고 겹과자는 한입 베어 물었다가 뱉어내야 했다. 어딜 가나 공업 생산품은 보이지 않았고 뱀술이나 고사리 말린 것 등만 눈에 보였다. 개발이 덜 된 동남앗아 어느 나라에서나 으레 마주할 수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p89

나쁜 고객들은 가장 좋은 고객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신임을 얻기 위해 일정 기간 성실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다 때를 만나면 본색을 드러낸다.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오랫동안 준비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일단 사고를 친 후에는 안면을 싹 바꾼다.

p139

‘모순덩어리’ 치킨을 파헤치는 책 ‘대한민국 치킨전’

즐거운 자리에서 더 즐겁기 위해서 먹는 음식, 치킨은 축제의 음식이다.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치킨이라며 시작하는 이 책은 정작 ‘치킨이 과연 축제의 음식인가?’라며 반문한다. 아버지께서 피곤한 상태로 퇴근하시며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오신 통닭이나, 맥주(또는 콜라)와 함께 친한 친구들과 뜯어먹는 치킨이나, ‘즐거워야 먹는 음식’인 건 맞다.

하지만 그 치킨이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지 여정을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게 주된 내용. 양계농장, 육계기업, 프랜차이즈, 치킨 학원 등 살면서 몇번 듣지 못할 용어들과 함께 결국 치킨은 자본주의의 산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결국 돈과 짙게 관련된 음식이라는 자조섞인 결론이 나온다. 뭐든 돈과 엮이면 그다지 반갑지 않은 법이다.

특히 ‘헬조선 헬조선’하는 이 때에 상당수 직업의 귀결은 치킨집 사장님이라고 했던가. 비교적 소규모의 자금으로 열 수 있는 치킨집은, 비교적 소액으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치킨이라는 음식의 양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치킨집이 모두 작은 구멍가게는 아니다. 대형 치킨집, 즉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는 떼돈을 벌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 치킨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애꿎은 ‘치킨집 사장님’들을 들들 볶는다. 대형 육계기업에 묶여있는 양계농장들도 마찬가지다.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한쪽의 얘기만 듣고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서민으로서 생각해야 할 일은 같은 처지의 서민들을 이해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이 책의 저자는 조심스럽게 치킨 프랜차이즈 사장님 한 분과 양계농장 주인 한 분을 인터뷰한다. 본사와 손님들의 눈치를 같이 봐야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비록 지면을 통해 전달되지만 빈약하기 그지없다. 힘없이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가슴 깊이 밀려오는 짠함을 지우기 힘들다. 하지만 그 아버지의 손에 치킨이 담겨 있으면 참 기분이 좋았지.

이게 참 묘한 모순인데, <대한민국 치킨전>에서는 각종 모순들을 파악하느라 온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은 모양새로 여러가지를 파헤쳐낸다. 개중 하나는 이렇다. KFC에 한방을 크게 먹인 것은 IMF 금융위기였다. 맥도날드와 함께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징인 KFC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총아인 IMF로 휘청거렸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어찌보면 우리네 삶은 모순으로 꽉 찼는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진실을 알아가고, 질서를 맞춰가는 재미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중에 치킨집이나 차릴까 하며 치킨을 뜯고 있거나, 닭 죽이는 게 비인간적이라면서 복날에는 꼭 삼계탕을 한 그릇 해야하는 게 너와 나의 솔직한 모습이지만, 그 속에서 우린 교훈을 얻고 소소한 행복감을 만끽한다. 이래서 ‘치느님’의 은혜는 대단한 것인가보다.

음식은 집단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없는 기억도 만들어낸다.
p26

음식에 대해 글을 좀 푼다고 할 때 꼭 등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고 말한 미식철학가 브리야사바렝과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다”고 말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다. 굳이 대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음식을 먹는 것은 문호를 먹고 소비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치킨이야말로 ‘생각하기에 좋은 음식’이지 않는가. 밥이야 괴로우나 즐거우나 먹는다지만 치킨은 ‘즐거워야’ 먹는 음식이니 말이다. 즐거운 자리에서 더 즐겁기 위해서 먹는 음식, 치킨은 축제의 음식이다.
p45

프랜차이즈 치킨점 창업에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100만원짜리 과외와 10만원짜리 동네학원 수업으로 진입할 수 있는 대학 레벨에 차이가 나듯, 치킨점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다면 메이저 치킨점을 차리지만, 그 사다리의 끝에는 노점 형태의 ‘닭강정’과 ‘장작구이통닭’이 있다.
p87

치킨의 승부처는 튀김 기술이 아니라 ‘소스와 염지’다. 소비자들은 닭살이 아니라 짭짤하고 부드러운 치킨 맛과 양념소스 맛에 반응한다.
p93

협회에 따르면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 규모는 100조원이 넘고, 프랜차이즈 브랜드만 해도 3,0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p100

분명한 것은 본사가 직영을 하지 않는 이상,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는 본사와 지사 모두 ‘갑’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족’이라 부르든 ‘파트너’라 부르든, 가맹점주에게 좋은 갑이란 없다. 오로지 나쁜 갑, 이상한 갑만 있을 뿐이다.
p106

1960년대 서울영양센터에서 한국의 치킨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삶는 닭에서 굽거나 튀기는 닭으로 변신했다는 뜻이다. 치킨의 계보를 따질 때 보통 1세대 브랜드를 ‘처갓집’ ‘멕시카나’ ‘페리카나’로 분류하곤 한다.
p106

(인터뷰)
-이번 멕시카나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고생하는 거 다 알지. 근데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게, 손님들은 속속들이 다 이런 사정을 몰라. 그런데 언론에서 떠들고 자꾸 멕시카나가 문제다, 그러면 손님들이 문제있는 치킨인가 보다 할 수 있거든. 그럼 안 그래도 지금 소비자들이 떨어져나가서 걱정인데, 괜히 긁어부스럼 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서 본사하고 협의가 잘 되어서 공급가격은 내려가고, 잘 좀 협의가 됐으면 싶어요.
p115

기술도 빽도 없을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두드리는 문이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이다.
p117

치킨점에 공급되는 닭은 조각을 내고 염지를 해서 진공포장(실링포장)을 한 상태다. 보통 10호(1킬로그램)의 절단 염지 닭이 4,000원에서 5,000원 사이다. 2014년 상반기, 프랜차이즈점이 아닌 개인점의 경우 하림 10호 염지닭이 4,500원 정도에 들어온다.
p120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은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치킨점 점주들과 프랜차이즈 본사가 이례적으로 후라이드치킨의 원가를 밝히며 롯데마트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리고 기업형 수직 계열화 문제로 입장 차이를 보여왔던 한국양계협회와 한국제육협회도 오랜만에 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몇몇 정치인도 이 대열에 합류했고,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마저 대형마트가 소상공인들에게 적합한 업종인 ‘치킨’을 건드리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힘을 실어줬다. 이는 치킨업계에서 보여줬던 딱 한 번의 ‘통큰 단결’이기도 했다.
p123

치킨집의 경쟁자는 치킨집만이 아니다. 바로 바꿔 탈 수 있는 치킨의 대체품목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킨과 햄버거, 피자는 대체성이 강한 품목들이다. 요즘 치킨집 사장님들을 부글거리게 하는 것은 ‘미피 50%’다. 이는 피자 프랜차이즈 ‘미스터피자’가 50퍼센트 할인 행사를 하는 날을 말한다. 금요일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필 그날 미스터피자가 할인 행사를 해버리면 치킨집은 불금이 아니라 ‘물금’을 보내야 한다. 롯데리아나 맥도날드의 할인 행사가 있거나 해피밀 세트에 끼워주는 장난감이 새로 출시되면 치킨집과 피자집은 또 영향을 받는다.
p130

40대 이상의 남성을 만나면 딱히 호명할 방법이 없어 서로를 ‘사장님’이라 부르고, 그 아내를 ‘사모님’이라 부를 뿐이다. 대형마트나 대형 조리업체, 청소용역회사에 고용된 40~50대 여성 노동자를 ‘여사님’이라 부른다고 그들이 진짜 여사님이 아니듯.
p131

청년유니온은 2015년도 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 심의에 맞춰 2014년 청년 임금인상 요구안을 조사한 결과, 희망 최저임금이 시급 7,489원이라고 밝혔다. 만 15~39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2014년 청년 임금인상 요구안 조사’를 진행한 결과라고 한다.
치킨집 배달 알바비는 6,000원 수준이고 이것마저도 점주들은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니, 사장 노릇도 알바 노릇도 참으로 힘든 세상이다.
p131

한국에서 배달음식업에 종사하는 인원은 16만명으로 추산되고, 그 매출 규모는 연간 10조원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먹기’ 애매한 사람들이 배달음식업의 주요 고객이고, 그래서 배달 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
p138

음식문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림스치킨은 한국형 외식 프랜차이즈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구워 먹는 치킨에서 튀겨 먹는 치킨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통닭 형태뿐만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통일된 간판과 매장 인테리어, 그리고 포장 용기라는 것을 간파했다는 점에서도 한국형 치킨 프랜차이즈의 준거를 제공했다.
p141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는 닭과 부자재를 팔아서 먹고 산다. 그러려면 가맹점 점포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빅모델 위주의 치킨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맹점 모집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면서 기존의 가맹점주들을 안심시키기에도 좋은 전략이다.
p154

아르바이트 에피소드는 주인공의 처지를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상대 남자 주인공들과 만남의 계기를 제공하는 중요한 장소로 매장을 등장시킨다. 네네치킨 시켜먹다가 남자 주인공과 만나고, 망고식스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식이다.
p156

2013년에 방영한 KBS 주말 드라마 <힘내라 이순신>의 여주인공 아이유는 카페베네가 만든 레스토랑 ‘블랙스미스’의 점원 노릇을 했고, 엄마 고두심은 아이유가 메인 모델로 있는 멕시카나에서 치킨을 튀기고 포장하는 일을 했다. 분명 블랙스미스 측이 더 많은 제작비를 댔을 것이다.
p157

맥주는 주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공식행사에 후원으로 나가는 맥주는 ‘면세’이기 때문에 주류회사 입장에서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것이다. 기업은 그렇게 순진한 조직이 아니다.
p188

치맥과 치콜은 무척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물론 소위 ‘음식궁합’이나 ‘안주궁합’으로 따지자면 최악의 조합으로 알려져 있다. 차가운 맥주와 튀김인 치킨을 함께 먹으면 소화도 잘 안 될뿐더러 ‘통풍’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는 소주와 삼겹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맥주 하면 치킨이고 치킨 하면 맥주다.
p188

근대의 음식 충격은 조미료와 고기, 기름으로 다가왔고, 이전의 미각들은 없이 살 때의 것으로 취급되었다. 새로운 맛에 열광하고 욕망하다 결국은 인이 박여버린 것이 지금의 음식이다. 그런데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참을 수 없는 감각이 남았다. 그것이 바로 ‘느끼함’이다… 이 느끼함을 순간 잠재울 수 있는 것이 바로 ‘탄산’이다.
p190

영양 과잉의 시대인 지금에야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치킨을 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맛보다는 영양을 앞세우던 가난한 시절, ‘영양센터’라는 이름 자체가 시대의 로망을 보여준다. 명동영양센터는 지금도 한국 치킨의 조상님 대접을 받으면서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p201

KFC에 한방을 크게 먹인 것은 IMF 금융위기였다. 맥도날드와 함께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징인 KFC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총아인 IMF로 휘청거렸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p210

그러나 KFC나 파파이스 같은 글로벌 치킨 브랜드가 국내에서 맥을 못 추게 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IMF의 필연적인 귀결, 즉 ‘치킨집 창업 열풍’이었다… 누군가에겐 시련이었지만 BBQ에게만큼은 IMF가 큰 기회였다. 굴지의 대기업들도 쓰러져가던 때, BBQ는 오히려 잘나가기 시작했따. 직장에서 쫓겨나는 가장들이 알량한 퇴직금을 들고 찾아갈 곳이 BBQ였기 때문이다.
p211

외식 메뉴의 기본 특징은 고기와 기름, 그리고 밀가루에 바탕을 둔다는 것이다.
p215

옥수수는 전분을 낳고, 전분은 물엿을 낳고, 물렷은 양념치킨을 탄생시켰다. 닭도 옥수수를 먹여 키운 것인 치킨은 곧 옥수수다.
p222

농가의 부수입을 올리는 기초 과정으로 가정 양계를 권해왔고, 심지어 1960년대에는 군대에서 양계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군인들 대부분이 농민이고 제대하면 농촌으로 돌아가리라 여겼기 때문에 ‘농천 근대화’와 ‘부농 만들기’ 국가 프로젝트에서 양계는 필수항목이었다.
p256

한국에서 한 해에 도축되는 닭은 약 8억 마리에 이르고, 그 중 절반 이상은 치킨으로 튀겨 먹고 있다… 양계장에서 직접 병아리를 ‘닭’으로 키우는 것은 양계 농가의 일이다. 그런데 이 양계 농가의 90퍼센트 이상이 육계 기업에 소속된 ‘계약 농가’이고, 그 육계기업의 50퍼센트가 하림에 소속돼 있다. 그러니 하림이 닭을 만들어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p263

어떤 육계회사의 계약농가라고 하면 당연이 계사는 본사에서 지원하는 줄 알지만, 이는 전적으로 생산자의 몫이다. 최근에는 무창게사 쪽으로 시설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무창계사는 말 그대로 창문이 없는 폐쇄형 계사로, 계사 내부의 온도 조절과 환기, 점등 등 계절과 날씨, 일조 시간과 상관없이 여러 가지 환경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밀도 사육에 유리하다. 개방계사로도 부르는 유창계사는 점등 조절은 자연일조 시간에 따라, 환기는 창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무창계사에 비해 인위적인 환경 조절이 어려워 고밀도 사육에는 불리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유창계사나 비닐하우스 형태의 계사를 가진 양계 농가는 빠르게 퇴출되거나 빚을 내어 무창계사를 짓고 있는 중이다.
p276

하림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을 집중시켜 자신들의 자본 회수는 물론, 입추와 출하 사이클을 조절해 계약농가가 다른 업체보다 1회전 정도 더 돌리게 하는 것으로(닭을 한 차례 더 키워내도록) 자사의 이윤 창출은 물론 농가 관리를 편하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15일마다 결제를 하는 시스템은 농가에서 끊기 힘든 매력이다. 수익률 면에서는 다른 업체가 낫다 해도 농가 입장에서 빠른 결제는 곧 현금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림이 갖는 가장 큰 힘이고 바로 ‘돈의 힘’이다.
p282

지대넓얕의 인상적인 고민 상담: 힘들 땐 어떻게 할까요

팟캐스트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서 몇회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청취자들의 고민을 받아 이를 상담해주는 편이 있었다. 여기서 “힘들 땐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김도인(‘지대넓얕’ 진행자 중 한명)’ 답이 인상적이어서 기록해둔다.

‘축’이라고 읽는 한자인데, 기본적으로 ‘막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역의 ‘산천대축(山天大畜)’이라는 괘의 그 축이다. 댐을 비유로 하면 벽을 높이 만들어 물을 가둔다는 의미다. 그런데 흐르는 물이 막히면 자연적으로 그 수위가 높아진다. 댐에 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한자에는 ‘쌓는다, 쌓인다’는 뜻도 있다. 막히면 쌓인다는 맥락이 담겨있는 셈이다.

댐에 물이 막히면 그 수위는 높아질지언정 더이상 흐르지 않는다. 우리 인생에서 뭔가 막히고 계속 실패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하지만 벽의 높이를 넘어설 정도로 수위가 높아진다면 그 물은 마침내 벽을 넘어 흐르게 된다. 지대넓얕의 진행자는 ‘폭발적인 역량’이 넘쳐 흐른다고 표현했는데 인상 깊었다.

내 인생을 가로막고 좀처럼 넘을 수 없는 것 같은 벽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속 되는 노력이다. 물을 계속 흘러보내야 수위가 높아지고 마침내 댐을 타고 흐르듯, 인생의 장애물을 넘기 위해선 계속 나의 역량을 부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 앞에서 도피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해결하고 끝내려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 畜이 주는 깨달음이다.

브아걸 새 앨범이 과학용어들로 꽉 찼길래

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과학자’라는 직업군은 없다. 교수, 연구원, 선생님 등이 과학자일 것이다. 그걸 인식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과학자라는 범주 안에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희망 직업군을 생각해냈다. 에디슨 같은 발명가가 되고 싶기도, 아인슈타인같은 물리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별(천문)에 관심이 많아진 뒤로는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이름이 멋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설명해줄 때 뿌듯함이 있었다.

사실 천체물리학자라는 말은 <과학소년>이라는 잡지에서 본 것이었다. 어떤 학생이 <과학소년>에 사연을 담아 보냈는데, 거기에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게 자신의 꿈이라고 쓴 것을 봤다. 당장 그 단어를 차용해 내 꿈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당시 별자리를 알아맞히고 성단 성운 등의 사진을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었다. 어린 아이의 단순함을 배우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 명쾌하고 시원하게 꿈을 설정하고 나니 어린 인생이 즐거웠다.

케플러의 123법칙, AU, 광년,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여름철 대삼각형과 소삼각형, 오리온자리와 플라이아데스 성단 등을 특히 좋아했다. 지금 회사에서 아둥바둥 일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당시 시각은 상당히 거시적인 셈. 우주적인 마인드로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졌다. 낮보다는 밤이 좋았다. 작은 쌍안경으로나마 달과 별을 보는 게 좋았고, 천문대라도 갈라치면 굉장히 설렜다.

과학자의 꿈을 접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택한 건, 직업으로서 과학자는 너무 정적일 것 같아서다. 직업과 성격이 분명 연관성이 있을 테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문과라고 정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한히 정적일 수 있는 것도 문과일텐데, 과학자들이 개인주의적으로 연구에만 미친듯이 매달리는 모습이 오버랩 돼 외향적인 성격 상 문과가 좋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지금의 일에 굉장히 만족한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미련은 항상 남는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서점에 가면 과학 코너에서 상대성 이론 만화책,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수학의 비밀 같은 책들을 본다. 인터넷에서 달 착륙 사진, 별 사진을 보는 것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과학편이 무지하게 재밌다. 거기에 나오는 과학과 기독교에 독실한 ‘이독실’이라는 패널에 굉장한 애착이 간다.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새로운 앨범을 냈는데, 그 컨셉이 세상의 ‘기본’이다. 앨범의 이름은 <베이직(BASIC)>. 제목을 보면, 신세계, 웜홀(warmhole), wave, 신의 입자, Fractal 등 과학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단어들이 줄지어 나온다. 웜홀은 그 ‘벌레구멍’이 아니라 ‘따뜻한 구멍’이긴 하다. 신의 입자는 힉스를 말하는 걸까?

웜홀의 가사를 보자.

‘우린 온몸을 다 부딪쳐 / 여기저기 다치게 / so warm fire in the hole / warm fire in the hole / 너는 나란 터널에 갇혀 / 그 속을 다 어질러 / it’s so warm fire in the hole / warm fire in the hole.’ 나만 야하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이상한가…

신의 입자는 이렇다. ‘

너에게 나의 몸을 맞춰 / 나에게 너의 몸을 맞춰 / 퍼즐처럼 들어 맞아 / 마침내 나는 너란 답을 찾아 / 이쯤에서 왼손으로 / 감싸 안고 rolling / 이쯤에서 두 손 위로 들고 / let’s get up moving now.’ 신의 입자라는 단서는 ‘가벼운 존재’라는 앞부분 가사에만 살짝 드러나는 것 같은데 왜 신의 입자인지 모르겠다. 가사 해석은 상상에 맡긴다.

Fractal(프랙탈) 가사는 좀 낫다.

‘저 아픈 기억 조각들은 / 감정의 전부가 되고 / 끊임없이 반복되네 again again.’ 조각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프랙탈의 성질이 있다. 이별 후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사실 가사들을 보면 과학 용어에 대한 아주 얄팍한 개념 정도만 파악한 채 감정을 형상화한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통상적인 사랑 노래에 의미없이 차용했다는 느낌을 준다. 이래놓고 마치 자신들이 ‘세상의 기본’들을 논하는 듯이 말하는 건 곤란하다. 대중가요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콘셉트를 약간 오버해서 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케팅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까지 안 하면 안 될 정도로 마땅한 전략이 없었던 걸까.

문득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이 떠오른다. 내 생애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3권 정도 꼽으라면 그중 1권은 이걸로 거의 정해져있다. 수학자 페르마가 책 귀퉁이에 휘갈기듯 써놓은 한 문장 때문에 몇백년간 수학계에 난제로 남은 명제가 풀려가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엮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한 채 읽어도 스토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이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밥 먹을 때도, 똥을 눌 때도 읽었다.

‘페르마’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쓴다면, 미지의 인생을 살지만 언젠간 답을 찾을 것이란 희망을 담지 않을까 한다. 페르마의 정리를 풀지못한 채 죽어간 수학자들이 많았던 것처럼 나도 인생의 답을 명확히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 도전의 ‘멋있음’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노래라면 들어주고도 싶을 것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최장집 교수

작년 6월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정치인 몇몇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해 기사가 난 적 있다. 아, 그의 저서는 아니다. 최 교수가 서문을 쓰고 박상훈 박사가 번역한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이다. 이 책을 받은 이들은 안희정, 손학규, 정동영 등인데 다들 읽어봤을까 싶다.

‘마키아밸리’와 ‘군주론’ 모두 친숙한 단어들인데 실상 그 내용을 알진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고등학교 정치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한두줄 정도로 훑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냥 모른다고 보는 게 편할 거다.

처음 손에 잡은 <군주론>은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 속에 나오는 고유명사들이 익숙지 않아 읽는 데 애를 먹었다. 중세 유럽의 역사를 자세히 다루고 그 안에서 정복하고 통치하는 군주들의 사례가 풍부하게 나오는데, 세계사를 한번 짚어보고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나갈 수록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그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바는 꽤 명료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번엔 최장집 교수가 쓴 서문의 내용 중 <군주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문’이라고 하지만 꽤 양이 많다. <군주론>의 최장집 해설편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본편과 같이 읽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군주론> 21장에서는 “…실천적 이성이란 바로 그런 불편함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그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을 최선인 것으로 간주해 선택하는 것에 있다”라고 권고한다. 정치에서 선택이란 두개의 선 가운데 차선을 발견하는 것이라기보다 두개의 악 가운데 차악을 발견하는 것인 경우가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강론>에서 이 문제를 체제 선택의 사례를 통해 다시 제기하고 있다. 세상만사는 인간의 의지와 이성에 의해 창출되기보다 ‘불가피함’에 의해 인간의 통제 범위 밖에서 움직일 때가 많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면서 행위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부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폐해가 가장 적은 대안들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런 기준으로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그 사례로 베네치아·스파르타·로마를 비교한다.

(마키아벨리의) 결과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주장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실천적으로 공리주의적인 기준을 통해 행위의 근거를 풍부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적 의무론에 결박되어 있던 기존의 경직된 정치 이론에 대응하려 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공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정이든 공화정이든, 다시 말해 정치체제의 유형이 어떠하든 민중의 역할이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온다는 점은 두 텍스트 모두에 공통적이다. 수를 권력 자원으로 하고 다수 인구를 점하는 민중의 정치 참여,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은 정치적 역동성의 중심적 동력이 된다. 민중을 적으로 돌릴 때 통치자의 지배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노베르토 보비오는 정치적 사실주의/현실주의를 두 차원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사이의 대립적 구분으로, 이를 통해 유토피아적 모험주의와 도피주의를 질책하고 인간의 완벽함과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둘째는 사실적인 것과 겉으로 보이는 것을 대립시킴으로써 권력의 숨은 측면 즉 가면을 벗기고 현상 유지를 탈신비화 시켰다. 현실주의 또는 사실주의는 영어 realism을 우리 말로 옮긴 것인데, 현실 대 이상이라는 첫번째 구분에서는 ‘현실주의’에 가까운 반면, 두번째의 사실적인 것과 표상된 것 또는 나타나 보이는 것 간의 구분에서는 ‘사실주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마키아벨리는 두 차원 모두에서 현실주의자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헌정사에서 “높은 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고 낮은 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풍경 화가에 자신을 비유한다.

(저자의 말) 드라마 <군주론>은 화자인 마키아벨리가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정치를 하면 좋은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 나가는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공직에서 쫓겨난 자신이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희망을 넌지시, 그러나 강렬하게 내비친다.

결국 메디치 가문의 유력자 가운데 아무도 <군주론>에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공직에 복귀하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마키아벨리 역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