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다니··· 허삼관은 울기 시작했다

결혼할 때, 일락이가 방철장의 아들의 머리를 쳤을 때, 임분방이랑 잤을 때, 옥수수죽만 먹을 때, 이락이네 생산대장 대접할 때, 일락이의 병원비를 마련할 때,

허삼관은 위의 상황에서 피를 팔아 돈을 번다. 오늘말로 바꿔 순서대로 하자면, 결혼준비를 위해 거금이 필요할 때, 자식이 사고를 쳤을 때, 불륜을 저지른 후 이를 덮을 때,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아이들의 선생님께 촌지를 드려야 할 때, 자식이 아파 병원비를 마련할 때 정도 되겠다.

누구나 돈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상황이다. 평소 모아놓은 돈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에 급전이 필요하게 된다면, 머리는 어질해지고 마음은 꼬집히듯 아릴 것이다. 심장은 그럴수록 요동하고 혈압은 올라 피를 팔기에 좋은 몸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피를 팔도록 설정해놨는지 모른다.

“여기 볶은 돼지 간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 가져오라구.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

허삼관은 피를 팔고 나서 식당에 가 꼭 이렇게 말한다. 아니, 그는 매혈 선배들로부터 이렇게 배웠다. 피를 판 다음 이렇게 말하는 게 필요했다. 계속 따라 읽어보면 기가 막히게 입게 감긴다. 피를 생산하는 간과 뜨근하면서 알싸한 술 한잔이면 으스스한 몸도 금방 덥혀지리라. 주문할 때 상까지 탕, 탕 친다면 금상첨화다. 하나보단 둘이, 둘보단 셋이 같이 말한다면 더 신이 날 것이다. 가장으로서 피를 한 것에 대해 이 정도 생색은 내야 살아갈 맛이 나지 않겠는가.

이제는 늙어서 자신의 피는 아무도 원하지 않고 가구에나 칠해야 한다니··· 지난 40년 동안 이런 일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피를 못판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매혈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다니······. 집에 무슨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나? 허삼관은 울기 시작했다.

매혈기는 곧 그의 인생기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더이상 자신의 피가 필요없다는 진단을 받은 허삼관은 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운다고 소용이 있을까? 눈물 콧물을 흘리고 땅을 치며 통곡을 하면 그의 피가 다시 젊은이들의 그것처럼 싱싱해질까? 그럴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허삼관을 응원한다. 그의 피는 돈이 되고 자식들의 밥이 되고 다시 그들의 피가 되어 또다른 생명들을 움직일 것이므로. 그는 더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 쓸모없는 피가 됐다면, 그 사실 자체로 허삼관에게는 정말 피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피를 팔아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피를 팔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잖는가? 그의 피를 받은 이들이 이제는 허삼관을 움직이게 할 때다. 그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맘껏 느끼고, 피에 대한 미련은 접으시길.

중국통인 선배에게서 추천받아 읽은 책이었는데 재치있는 스토리 전개가 장난 아니다. 쓱쓱 지나가면서도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찾아보니 위화라는 작가는 중국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란다. <허삼관 매혈기>는 1996년에 나온 책인데, 더 훨씬 전 당시 중국의 어려운 생활상을 옆에서 보며 기록한 르포같기도 하다.

유머가 녹아있는 책이 좋다. 유머와 함께하는 삶은 더더욱 좋다. 이 책은 고민과 유머가 함께 있어 그 맛이 더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