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일부를 도려낼 수 있을까… 애플tv+ ‘세브란스: 단절(Severance)’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내 영혼은 몸에 잠깐 얹혀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몸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 영혼의 기억은 그 몸에 종속되어 기존의 나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현재 들어와있는 인생의 기억만 남게 된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새로운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지금의 나도 혹시 그런 상태가 아닐까. 삼십 몇년 간 ‘현재의 나’의 인생을 살았던 것 같지만 실제론 34년을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1년 전 영혼이 현재의 나로 들어왔는데 마치 계속 나였던 것처럼 사는 것 말이다. 동일한 원리로, 내 영혼은 돌고 돌아 계속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데 그 결과가지금의 나인 것이다. 내가 믿는 종교 사상과 배치되는 개념이긴 하다.

무심코 떠올렸던 이러한 망상과 궤를 같이 하는 시리즈가 ‘세브란스: 단절’이었다. 애플티비+에서 볼 수 있다. 소재가 흥미로웠다.

‘루먼’이라는 회사 직원 중 일부는 ‘단절’ 시술을 받고 근무한다. 머리에 어떤 칩을 넣는 것으로 시술은 완료되는데, 칩을 삽입한 사람이 특정한 공간에 가게 되면 이전의 기억으로부터 단절된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왜 내가 이곳에 있는지를 모른 채 활동해야 한다. 그곳은 근무지이다. 따라서 일정 시간 ‘새로운 나’로 일하게 된다. 단절된 채 루먼 회사 내에서 근무하는 나는 ‘이니’라고 하고, 회사 밖에서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나는 ‘아우티’라고 부른다. 아우티가 본캐, 이니가 부캐랄까.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라는 말이 있다.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단 얘기다. 루먼은 단절 시술이 워라밸을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론 맞는 말인 것 같다. 이 정도로 일과 여가를 분리하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사실 여기서부터 삐걱거린다. 근무시간을 8시간, 나머지 시간을 16시간이라고 해보자. 24시간 존재하는 나에게는 일과 여가가 분리되는 셈이지만, 8시간 일하는 이니는 근무의 반복이다. 퇴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문이 열리니 출근이다. 물론 잠도 자고 휴식도 취했으니 몸은 개운하다. 옷도 갈아입었다. 하지만 퇴근하자마자 출근이다. 마찬가지로 16시간 쉬는 아우티는 여가의 반복이다. 회사를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잠에 들고 다시 일하러 가는 것 같더니 곧 퇴근이다. 그래서 출근하는 주인공은 엘리베이터 앞 경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곧 봐요”

이게 의미가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워라밸 추구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일을 반복하는 이니는 갑갑함으로, 휴식을 반복하는 아우티는 무료함으로 점철될 것 같다. 이는 내 삶을 단순히 단절시키는 행위가 아닌 거다. 도려내는 것이다. 삶의 분리를 넘어 나눠 쪼개는 것이다. 수십 년 간 살아온 내 삶이 3분의 2로 축소되는 것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또다른 나이면서 온전히 나라고는 할 수 없는 이니가 가져간다. 그 이니는 루먼을 위해 일한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인가.

드라마에서의 갈등은 이런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무실을 같이 쓰는 4명에겐 각각 다른 사연이 있지만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한명씩 불만을 갖다가 결국 모두가 아우티의 삶에 닿고 싶어한다. 나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루먼은 이를 교묘하게 방해한다.

흥미로웠던 건, 루먼의 관리자들은 으레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되던 전형적인 관리자들과는 다르다. 친절하고 부드럽다. 직설적이기보단 순화해서 말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충실하게 이해하려는 것 같다. 난 이런 디테일이 좋았다. 이니들은 이런 관리자들의 태도에 일정 부분 신뢰감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이는 더 잔인한 것이다. 타인의 신뢰를 발판삼아 이용하고 숨기고 속인다.

루먼이 어떤 계획을 갖고 이러한 일들을 진행하는지는 시즌 1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즌 1은 거대한 서막 느낌이다. 몰입도가 절정으로 치달을 쯤 시즌 1이 끝난다. 어? 이렇게 끝난다고? 와씨,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거야? 시즌 2는? 기대가 커지니 아쉬움도 큰 마지막이었다. 난 시즌 2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좀 찾아보니 시즌 2는 4월 6일 제작하기로 했단다. 두번째 시즌이 방영되려면 좀 기다려야겠지만 공백을 두고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와 여운이 많았다. 한번 더 보면서 디테일한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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