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 에버노트에는 3400여개의 노트가 있는데, 이 중에서 필요로 하는 노트를 일일이 찾는 건 멍청한 짓일 거다. 평소에 노트를 차곡차곡 모아두는 이유는 필요할 때 찾기 위함이기도 하다.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노트를 정확하게 찾는 게 검색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에버노트는 강력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프리미엄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더 망에 드는 건 저장된 PDF파일 안에 있는 내용까지도 검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키워드를 치면 그 키워드가 속한 PDF파일(이 들어있는 노트)도 신속하게 찾아준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게 있다. 에버노트는 아직 한글 검색과는 ‘살짝’ 덜 친하다는 것.
영어로 키워드 검색을 하면 정확하게 찾아준다. 두가지 단어를 같이 찾아도 (예를 들어 evernote premium) 두가지 다 포함하는 노트를 찾아주고, 그 하위에는 그중 한 가지 키워드를 포함한 노트를 보여준다(evernote를 포함하거나 premium을 포함한 노트).
하지만 한글 검색은 영 아니다.
위 그림은 에버노트 검색창에서 ‘안드레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한 결과다. ‘죄송합니다. 표시할 노트가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하지만 내 에버노트 안에는 안드레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노트가 존재한다. 그래서 한글로 검색할 땐 이렇게 해야 한다.
키워드 앞뒤로 큰따옴표(“)를 넣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구글 검색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비록 구글에서는 “를 쓰지 않아도 정확하게 검색해주지만. 아무튼 한글로 노트를 검색하고자 할 때엔 키워드에 큰 따옴표를 넣어주자. 두 가지 이상 낱말도 큰 따옴표를 붙이면 정확하게 검색해준다.
가트너에 따르면 빅데이터란 대용량(high-voloume), 고속(high-velocity), 다양성(high-variety)의 특성을 가진 정보자산으로서 통찰력과 의사결정을 향상시킨다.
최근 빅데이터를 이용한 성공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의 심야버스. 서울시가 2013년에 신설한 심야버스 7개의 노선은 30억건의 휴대전화 통화량 패턴분석 결과를 활용해 정해졌다. 시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노선을 정할 수 있었다.
공간빅데이터란 공간정보와 빅데이터가 결합한 형태의 정보다. (ex. 휴대전화 통화량 빅데이터+서울시 위치정보)
빅데이터가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구글 플루 트렌드(Google Flu Trends)를 통해 특정 지역 독감예보를 한 이후다. 당시 구글의 예측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보다 2주 정도 빠르게 독감확산을 예측했다. 아래 그래프를 통해 구글의 예측결과와 CDC의 데이터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인포그래픽 분야를 발전시키는 대표적인 회사는 조선닷컴이다. 정적인 정보전달에서 벗어나 사용자가 참여하는(인터랙티브한 그래픽을 말하는 듯) 정보를 제공한다.
대한민국 정부도 인포그래픽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2013년에 이어 2014년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인포그래픽을 활용한 보고를 실시했다. 하지만 아직은 미미한 실정.
국방분야 인포그래픽 적용사례로 2010년 영국의 가디언지에서 제작한 “Wikileaks Afghanistan files: every IED attack, with co-ordinates”기사를 들 수 있다. (기사는 여기서 확인, IED란 쉽게 말해 사제폭탄이다.)
IED의 폭발 빈도, 제거된 건수, 연도별 증가추세, IED의 지역적 분포, 폭발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와 부상자수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을 통해서는 사용자가 원하는 날짜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가령, 2007년 1월 1일부터 2007년 12월 31일까지를 선택하면 해당 기간의 하루 단위 IED 폭발일지를 보여준다.
아래 모션 인포그래픽에는 9만여건의 사건 중 가디언지가 선정한 300개의 핵심 사건이 정리돼있다. 마우스를 개별 사건에 올려놓으면 사건의 정보가 뜬다. 하지만 현재는 모션 인포그래픽이 아닌 이미지로만 처리돼있다.
인포그래픽은 흔히 말하는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의 수준이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가공하는 제작자의 결정적인 의도가 담긴 산물이다.
인포그래픽이 갖추어야 할 속성 5가지
1 데이터의 시공간적 정확성
2 정보의 압축성
3 고도로 가공되고 처리된 정보여야 할 것
4 정보의 공유와 개방, 소통
7일 오후, 시간이 나서 영화를 봤다. 영화관은 신도림 CGV. 12시쯤 하는 영화를 찾으려니 두세 개밖에 없었다. 다른 것들은 다 그저그러려니 하는 것들이라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 ‘국제시장’을 택했다.
‘국제시장’은 별로 내키지 않았던 영화였다. 내안에 ‘빨갱이’ 기질이 살짝 있는지라 ‘국제시장’이 보수층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게끔 하고, 진보라고 하는 층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거부감이 생긴 탓이었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보는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감.ㅋㅋㅋ 영화 관람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게는,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기 위해’, 또는 ‘왜 이것이 화제가 되는지 알기 위해’가 영화를 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렇게 해서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국제시장’을 자그마한 9관에서 보게 됐다.
약간 딴 소리긴 하지만 영화 시작 전 나오는 광고는 너무 많은 것 같다. 분명 25분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한 40분은 광고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관 광고는 TV광고보다 재밌긴 하다. 그래도 좀 자제해서 영화에 더 몰입하도록 해주면 좋겠다.
다시 돌아와서, 어떤 작품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드라마든, 한 마디의 말로 그것을 표현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주절주절 쓰기 귀찮으니 ‘국제시장’을 한 마디로 평가해보자면 ‘웃음과 감동을 주려고 작정하고 만든 가벼운 인생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국제시장’에 대한 말들이 많아 시작하기 전에는 마음을 단단히 잡았다. 보수층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생각보다 영화는 가벼웠다. 이 가볍다는 것은 흥남철수, 파독, 베트남 파병 등의 역사적 사건 자체가 가볍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런 사건들은 당시 살았던 우리 부모세대에게 크나큰 삶의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가벼움은 ‘인생의 영화화’가 가벼운 콘셉으로 진행됐다는 뜻이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유머코드는 대표적인 ‘가벼운 콘셉’이다. 특히 빵 터졌던 부분은 황정민이 김윤진 양의 ‘머리끄댕이’를 확 붙았던 장면(아래)이다.ㅋㅋ 머나먼 독일 땅에서 “나 잡아봐요~” 하며 로맨스를 만들려는 윤진양을 “잡았데이~” 하며 목이 꺾일 정도로 머리칼을 잡아챈 연기는 신선하면서도 따라하고 싶게 다가왔다.
오달수의 ‘달구’도 감칠맛을 더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은 대부분 황정민이 오달수와 함께 겪는다. 둘은 6.25전쟁 후 동냥질을 같이 하기 시작해, 광부 자격으로 독일에도 함께 가고 베트남에도 기술자 신분으로 갔다오더니 할아버지가 된 현재까지도 서로의 손주를 돌봐주는 절친이다. 그는 별로 얄밉지 않았고 과하지도 않았다. 오달수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없었으면 아마 영화가 맥이 빠졌을 것이다. 그야말로 다큐멘터리가 됐을 것이다.
윤 감독은 또 영화 곳곳에 실제 인물들을 배치시켰다. 정주영 회장이나 이만기, 김봉남씨와 남진, 김동건 아나운서 등 나이 드신 분들이라면 큭큭거리며 웃을 수 있는 양념들을 (약간은 적나라하다싶을 정도로) 찰싹찰싹 뿌려놨다.
그래서 난 ‘국제시장’이 가볍다고 하는 것이다. 자칫 역사스페셜이 될 뻔한 이야기를 희화화시키려 노력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혹자는 이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이것이 그 시대의 전부인 양 과대포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평론가의 말마따나 ‘토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내게는 단지 윤덕수(황정민 분)라는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혹자들은 근대사를 미화했다고 하지만 나는 희화화로 본다. 또 윤덕수의 입장에서는 힘겹게 살아낸,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린 그 경험들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게 참 오랜만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나라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서’ 따위의 감정은 아니다. 그 당시 시대의 아픔이 내게 다가온 것도 솔직히 아니었다. 단지, 내가 저 상황이라면, 내 실수로 생이별한 동생을 몇십년만에 만난 오라비가 나라면. 인간 윤덕수가 머나먼 타국의 동생을 지켜보는 심정이 콱 꽂힌 것이었다. 이별과 만남은 어느 나라, 어느 공간에서도 통용되는 감정이 아닌가.
JK필름이나 CJ에서 지금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국제시장’을 만들었다는 말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팩트야 정확히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보수에 무조건 유리한 방향으로 가느냐는 명확하지 않다. 국민과 국가지도자 간에는 큰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국제시장’의 윤덕수의 삶이 고달프고 파란만장했던 것과, 당시 지도자들이 정치를 잘하고 국민들을 ‘진정’ 위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별개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진보적일 수 있다. 영화를 본 후 이승만을 비판할 수도 있고, 박정희를 씹을 수도 있다. 당시 지도자들의 공과 사는 역사에 켜켜이 녹아있다. 이것들을 발견하고 사색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이를 ‘보여준다’는 사실만으로 영화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국제시장’은 과하지 않았던 것 같다.
2011년 11월, KBS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이라는 코너가 연일 인터넷 상에 오르내렸다. 한 국회의원이 거기에 나오는 개그맨 최효종 씨를 모욕죄로 고소했기 때문. 내용은 이렇다. 개그맨 최효종 씨는 11월 2일자 방송에서 국회의원을 풍자하는 연기를 펼쳤다. 그 중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여당의 수뇌부와 친해져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하면 된다는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국회의원을 ‘집단적으로 모욕’한다는 이유였다. 대본을 살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_kWokLHbibo
어린이 여러분 국회의원이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아주 쉬워요. 국회의원이 되려면 좋은 대학을 나올 필요 없이 고등학교 졸업 후에 사법고시 패스하고 국회의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판사를 하면 되요. 판사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사법 연수원에서 상위 10%안에만 들면 돼요. 이렇게 판사가 된 여러분들은 집권 여당의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하면 되는데 출마할 때도 공탁금 2억만 들고 선관위를 찾아가면 되요. 너무 쉽죠. 이렇게 후보가 돼서 당선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그냥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를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돼요. 선거 공약도 어렵지 않아요.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역을 개통해 준다든가, 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돼요. 그래도 당선이 될까봐 걱정이라면 상대방 진영의 약점만 잡으면 되는데 과연 아내의 이름을 땅을 투기하지 않았는지 세금은 잘 내고 있는지. 이것만 알면, 아! 그래도 끝까지 없으면 사돈에 팔촌까지 뒤지세요. 무조건 하나는 걸리게 돼있어요.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은 이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진다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 이렇게 쉽게 국회의원이 되서 서민을 위한 정책 펼치세요.
비록 개그 프로그램이라 해도 국회의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만하다. 실제 국회의원들이 그렇든 그렇지 않든 국회의원 자체의 이미지가 깎였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선량한 의원들도 하나같이 매도당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 어느 날보다 호응이 좋았다. 그만큼 이 ‘국회의원 풍자’에 공감했다는 뜻이리라. 특히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를 하고,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된다’, 공약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울 때는 ‘괜찮다, 말로만 하면 된다’는 대사 뒤에는 환호성과 함께 엄청난 박수갈채가 나왔다.
평소 TV에 나오는 정치인들은 정말 그랬다. 식사하면서, 또는 술 한 잔 기울이면서, 때로는 커피 한 모금씩 마시면서 정치인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이 뒷담화(?)를, 개그맨이 나와서 조롱하듯 읊어대니, 보는 이들은 가려웠던 곳이 시원하게 긁히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국회의원이 개그맨을 고소한 이 사건은 12일 만에 고소를 취하하면서 작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국회의원이 고소를 취하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이는 정작 네티즌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다. 대신 최효종이라는 개그맨이, 용감한 비판 개그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최효종 씨는 자신의 다른 코너에서 “특정 인물이 하지 말라고 하면 나는 끝까지 할 것이다”라고 하여 소신있는 개그맨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조선시대 한 인물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그 사람에 대한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하면 개그맨 최효종 씨는 미안하지만 비교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는 어릴 적 나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김삿갓, 풍자의 에너지가 넘쳤던 인생
방랑 시인 김삿갓의 삶은, 말 그대로 정처 없었다. 과거시험에서 조부를 꾸짖는 시를 지어 급제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평생을 삿갓으로 하늘을 가렸던 그였다. 하지만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시의 본능을 가릴 수는 없었나보다. 나그네 신분으로 전국을 누비며 지은 시들의 면면을 살펴보노라면 시는 그냥 김삿갓 자신이요, 그 자신이 곧 시였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 그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를 참 많이도 지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노래하기도, 고향 생각에 잠겨 그 향수(鄕愁)를 표현하기도 했다. 가난해도 인심이 넉넉한 집을 만나 뭐라도 얻어먹으면 인간미 넘치는 시가 나오는 반면, 인심이 야박한 집 앞에서는 침을 퉤 뱉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아니꼬운 심정이 그대로 시에 들어가 박혔다. 그는 무엇보다 시어 한 글자 한 글자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가 있었다.
彼坐老人不似人 (피좌노인불사인) 저기 앉아 있는 노인은 사람이 아니다 疑是天上降眞仙 (의시천상강진선)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겠지 其中七子皆爲盜 (기중칠자개위도) 그의 아들 일곱은 모두 도적이다 偸得碧桃獻壽筵 (투득벽도헌수연) 서왕모의 천도복숭아를 훔쳐다 환갑잔치에 바쳤네
-「還甲宴(환갑연)」
김삿갓이 어느 환갑잔치에 들러 읊은 시다. 잔치다 보니 거나하게 얻어먹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첫째 시구를 읊자 그곳 자식들이 화를 냈다. 잘 얻어먹고 나서, 사람이 아니라니. 그러나 곧 둘째 시구를 듣자 모두 좋아했다. 다시 셋째 시구를 읊으니 다시 인상을 쓰며 달려들 듯이 했지만, 마지막 시구를 듣자 무릎을 탁 치며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회갑잔치에서 이와 같은 칭찬이 또 어디 있을까? 김삿갓이 오늘날 살아있었다면 김제동 뺨치는 인기 MC가 됐을 수도 있겠다. 그의 시 하나 하나에 사람들은 울고 웃고 화내고 감탄했다.
그의 유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은 김삿갓이 황해도의 어느 서당에 들렀을 때 지은 시라고 한다. 문을 열어보니 훈장은 어디 갔는지 없고 아이들만 있었는데, 그놈들이 초라한 삿갓의 차림을 보고 비웃은 모양이다. 김삿갓은 대뜸 욕시를 읊었다.
學生乃早知 (학생내조지) 학생은 곧 일찍 앎을 닦았는데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선생은 와서 뵙지를 아니하도다.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안은 모두 귀한 것 투성인데 學生諸未十 (학생제미십) 학생은 모두 열 살(놈)이 안 되구나
-「辱說某書堂(욕설모서당)」
시를 받은 당사자라면 불같이 화를 냈을 거다. 아니, 당황하기도 감탄하기도 했을 것 같다. 제3자는 배를 잡고 웃을 시다. 뜻은 평이하지만 시를 소리내서 읽어보면 입에 담기 민망한 시어들이 나열된다. 욕하는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이를 담은 그릇이 더 날카로워 공격적이다. 키득거리며 계속 시를 읽어보게 된다. 다른 이들에게도 재밌으라고 보여주고 싶다. 김병연 자신도 양반이었지만 성적인 금기에 갇히지 않아 자유로웠다. 양반이 양반을 ‘상스럽게’ 욕하는 게 통쾌하고 즐겁다.
김삿갓의 삶은 이렇듯 유희와 조롱으로 가득 찼다. 그 안에 잠재된 비판의식은 시 속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되었다. 과거 시험에서도 신랄하게 본인의 조부를 비판하지 않았는가? 삿갓은 적재적소에 적나라하고도 적절하게 시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정신과 의식은 현대에 와서도 신선하게 보인다. 현재 김삿갓이 살아있다면, 그는 아마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희 콘서트를 벌이고 있으리라.
‘낄낄거림’을 잠시 숨기고…
때때로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시가 더 점잖아진 게 아닌가 생각된다. 김삿갓의 시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다. 교과서에도 일반 대중들이 보기에 별 문제가 없고, 교양이 있어 보이는 시들만 실리니 그럴 수도 있겠다. 서당에서 김삿갓이 읊었던 시를 학교에서 가르친다면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이해도 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인들이 살았던 시대가 아예 김삿갓 류의 조롱을 못하도록 막았다면? 다음의 시는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7)
장소는 영화관이다. 과거 영화관에서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애국가를 부르는 순서가 있었나보다. 지금은 없다. 그래서 시의 전체적인 배경이 영화관이라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학교 교실이 떠올랐고 강당이, 그리고 운동장이 떠올랐다. 조회 시간에 애국가를 꼭 불렀던 기억이 난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 기억난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로 시작되는 구절을 읊으며 가슴에 손을 얹을 때,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그 엄숙함을 음미했다. 이 맹세는 시간이 지나며 좀 더 간략하게, 그리고 더 온화하게 바뀌었는데, 정확하게는 잘 외워지지 않는다. 단지 어릴 적 외웠던 구절만이 기계적으로 튀어나올 뿐이다.
교육은 이토록 영향력 있는 것. 그렇기에 때때로 무서운 것이다. 시가 쓰인 시기가 80년대 군사독재 시대라는 사실은 분위기를 으스스하게도 만든다. 최근 나온 「남영동1985」라는 영화가 배경이 됐던 시대다. 한 쪽에선 시인이 영화관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한 쪽에선 고문당하고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과잉반응인가? 시를 읽으며 답답함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을숙도에서 날아오르는 저 새들은 기러기거나 갈매기일 테지만, 끼룩끼룩 우는 저 새들이 어떤 새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싶다. 단지 그들의 자유가 부러울 뿐. 그들은 끼룩대기도 낄낄대기도 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으로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도 낄낄대고 깔쭉대면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싶지만 현실은 대한(大韓) 사람일 뿐이고,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아야 할 뿐이다. 주저앉는다는 마지막 시어에서 시인의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좌절감이 엿보이기도 한다. 시의 전체적 분위기는 영화관의 그것과도 같이 어둡고 막막하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히틀러 같은 대중선동가들은 연설하는 법이 따로 있다고 했다. 먼저 모든 불을 꺼 주위를 어둡게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조명을 비추어 모두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은다. 이는 최면과도 비슷한 요법으로, 연설이 보다 더 힘 있고 강력하게 전달되게끔 하는 장치다. 위 시의 영화관은 마치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사방이 껌껌한데 스크린에서는 파아란 하늘에 태극기가 펄럭인다면 이 또한 얼마나 장엄한 장면이 될 것인가? 그리하여 이 어두운 영화관은 그 80년대를 나타내는 훌륭한 장치가 됐다.
그러나 시인은 단지 이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주저 앉아버리는 것으로 마무리 짓지는 않았다. 새 떼들이 끼룩거리면서 날아오르는 장면 안에 그들은 낄낄거리기도 한다. 새가 낄낄거린다고? 낄낄대는 장면은 한 번 더 나온다. ‘우리들’은 낄낄거리며 깔쭉대며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싶다. 시인의 심정은 여기 ‘낄낄’거리는 시어에 집약돼 있는 게 아닐까?
보통 웃을 때 낄낄거리며 웃진 않는다. 낄낄 웃는다는 건 뒤에서 웃는다는 거다. 웃음을 유발하는 대상 앞에서가 아니고, 그 뒤에서 몰래 숨죽여서 웃는 웃음이다. 고소해서, 또는 어떤 일이 통쾌해서 그리 웃는다. 때로는 음흉한 웃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경박한 웃음이 되기도 한다. 시인은 무엇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고 싶다는 것일까?
그 대상은 사마귀 유치원의 국회의원 같은 이들이 아니겠는가? 정치에 관해서라면, 위에 계시는 분들에 대해서라면 어떤 말이든 입 밖에도 꺼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부당한 제도와 정책들이 강제되는데도 잡혀갈 것이 두려워 차마 반론 같은 건 염두에도 못 두었을 그 때, 사람들은 얼마나 최효종 씨처럼, 소위 ‘윗대가리’들의 부정한 행태에 대해 조롱하고, 한 번 더 씹어주고, 낄낄거리고 싶었을지도. 영화 한 편을 감상하더라도 시작하기 전에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들어야 하는데, 저 화면 속의 새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부러워서 이런저런 생각은 해보지만, 이것이 ‘국회의원이 되는 방법’이나 ‘김삿갓의 적나라한 시’는커녕, 입도 뻥긋 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현실. 낄낄대고 깔죽대고 싶은 건 엄연한 인간의 본능이요, 지식인이라면 더더욱 불의에 조소를 보내고 싶을 터다. 그리하여 ‘새들이 세상을 뜨는’ 장면 안에는 그들끼리의 ‘끼룩거림’에 더 방점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MBC Freedom, 해학 Freedom
그래서인지 이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표현의 자유는 매우 큰 진보를 이룬 듯 보인다. 일단 영화를 보기 전 애국가를 경청하는 집단의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그 변화들은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 물론 이전 조선시대에도 양반들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하위문화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일제 강점기를 지나 민주화의 성장통을 겪을 때쯤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가, 민주화가 꽃피기 시작하면서 자연히 지금의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본다.
정치 풍자 개그를 듣고 있으면 양반의 탈을 쓰고 우스꽝스럽게 몸을 놀리며 민망한 언행을 대수롭지 않게 행했던 광대들이 오버랩 된다. 한 사람이 나와서 쇼를 하면 관객들은 즐겁다. 여기저기서 공감한다는 듯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낄낄거리며 그들의 쇼를 보고 있노라면, 막힌 게 뚫린 듯 시원하고 통쾌하다. 여전히 우리 민족은 부조리한 현실을 웃음으로 치환할 줄 안다.
그런데 이 정치적 웃음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같이 있는 정치의 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은 연일 선거 관련 보도를 하는 데 신났고, 국민들은 한 해 두 번 치루는 선거에서 과연 어느 쪽이 정권을 잡을 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정치와 언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모든 국민들이 정치 상황을 일일이 파악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언론은 그 일들을 대신 해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선거철이 되면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언론이 연초에 파업을 선언해버렸다. 그것도 세 개씩이나. 이 또한 정치적 활동이긴 하다. 3사 모두 사장 임명권과 관련해 반대하는 기자들이 회사를 나갔으니 말이다. 그들은 각자 기존 뉴스들을 풍자하는 뉴스를 만들었고, 이 뉴스들은 유투브 등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그 중 MBC는 이 사태에 제일 해학적으로 접근했는데, 3월에 서울역에서 그들이 한 퍼포먼스가 주목을 받았다.
‘MBC Freedom’이라는 노래는 기존 가요를 개사한 것이다. 단순한 멜로디에 코믹한 퍼포먼스 때문에 인기를 모았던 이 곡은 MBC 파업 기자들의 재치 있는 개사로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특히 이 영상은 올해 3월 서울역에서 찍은 것으로, 기자들의 플래시몹 퍼포먼스를 담았다.
이제까지는 한 개인 또는 소집단이 나와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이를 보는 관객들이 웃어주는 프레임이었다. 반면 이 퍼포먼스는 더 큰 규모의 집단이 특정 대상을 희화화한다. 틀이 진화했다. 이따금씩 개인이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데서 더 나아가, 불특정 다수가 같이 낄낄거리는 포맷이 형성됐다. MBC Freedom에서도 다 같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낄낄거리고 헤어진다. 서울역이 아니라도 좋다. 더 넓고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는 장소라면 당연히 환영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어울리며 문제의식을 몸짓으로, 그리고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웃고 떠드는 것은 하위문화, 진지하고 심각한 것이 고급문화라는 개념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개념이 진실인지도 아리송하다. 당시 장원 급제를 할 정도로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김병연만이 오직 김삿갓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웃고 떠드는 게 하위문화라는 인식이 틀렸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어를 탁월하게 구사해야 시로써 사람들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는 법.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크나큰 창작의 고통을 매주 겪는 개그맨들이나, 기자의 격식을 벗고 춤추고 노래하며 유쾌하게 조롱하는 MBC 기자들이나 다 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겠다.
따지고 보면 남을 웃긴다는 건 지적활동의 정점이다. 옛날 옛적 탈을 쓰고 춤을 추며 양반들을 조롱하던 광대들의 반란은 이제 시작됐다. 지식인들이라 자처하는 자들이 유쾌하게 사람들을 웃길 수 있어야 하는 시대다. 웃음을 즐길 뿐 아니라 웃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대다. 더 많은 김삿갓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2012년 2학기 수업을 들으며 마지막 기말레포트로 제출했던 글이다. 수업 이름이 생각이 안 났다(맙소사, 벌써 기억력이). 그래서 기억해보려고 머리를 싸맸다가, 결국 검색했다.
“문화혼융의 시읽기”
강의명을 들었을 때 굉장히 따분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그 수업을 신청한 이유는 화학 수업의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참 다른 사람들의 말에 혹하는 걸 잘한다. 그 화학 수업 교수님도 베스트 강사로 이름 높은 분이었고, 그분의 입으로부터 “그 수업이 장난 아니게 재밌다”는 코멘트를 캐치하고 바로 신청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수업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따로 하면 좋겠다.
대신 이 글에 대해서 몇가지를 밝히자면, 우선은 단지 이것저것 사실들을 짜깁기할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름의 철학을 담은 글이다. 이 시절 웃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웃음’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게 약간 모순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나꼼수’의 열혈팬이었고, 신방과 학생으로 언론사들의 파업이 흥미롭기도 했다. MBC 노조가 만든 이태원 프리덤을 리메이크한 MBC 프리덤이 그래서 더 흥미로워보였다. 나꼼수나 MBC프리덤이나 현상적인 모순들을 웃음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같아 보였다. 나중에 기자가 되더라도 ‘웃기는’ 기자가 되자고 생각한 것도 이때쯤이다.
MBC 프리덤을 맨 마지막으로 두고 다른 소재들을 찾아보니 주변에 해학적인 요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개그콘서트가 그랬고, 어렸을 때 재밌게 읽었던 김선달이나 김삿갓이 그랬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시 중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있었다. 대신 시에는 그러한 웃음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진 않았다.
같이 엮어보니 큰 줄기를 갖는 듯했다. 앞으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보도를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