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관심이 없다고 하고, 특히 겨울에 열려 인기가 떨어질 거라고들 해도 역시 월드컵은 월드컵이다. 그 자체로 세계인들의 축제이며 경기가 이어질 수록 재미도 더해진다.
어젠 잉글랜드와 이란의 B조 1차전 시합이 있었다. 잉글랜드의 6:2 대승이었다. 프리미어리그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리그이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썩 좋은 성적을 내오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 팀은 확실히 달랐다. 선수들 개개인도 몸값에 걸맞게 개인 기량이 출중할 뿐더러 조직력도 잘 맞아 보였다. 6골을 넣은 골 폭풍이 전혀 과하지 않은 느낌. 이번 대회에서 주목을 많이 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실력 외에도 이 팀이 주목도가 높아지는 건 다른 이유들도 있어 보였다. 팀 자체에 스토리텔링 요소들이 많다. 이번 경기에만 나온 이야깃거리를 잠깐 정리해보면,
1. 주장 완장

잉글랜드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팀은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One Love’ 주장 완장을 착용할 예정이었다. 카타르는 동성 결혼이 금지돼있는 나라다. 하지만 FIFA에서는 ‘각 팀 주장은 FIFA에서 제공한 완장을 차야 한다’고 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엘로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 직전까지 잉글랜드의 주장 해리 케인이 원 러브 완장을 찰지 말지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결국 케인은 원 러브 완장을 하지 않았다. 벌금을 내야 한다면 했겠으나 경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대신 FIFA가 정한 ‘차별 반대(No discrimination)’ 완장을 찾고 경기에 나섰다.
2. ‘무릎 꿇기’ 퍼포먼스
EPL에선 매 경기 시작 직전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의미로 모든 선수들이 잔디에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 퍼포먼스를 월드컵 경기 전에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왜 카타르에서 이 퍼포먼스가 주목을 받을까? 카타르에서 이주 노동자, 성 소수자 등의 인원이 탄압받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고 하지만, 정치도 스포츠도 우리 생활의 중요한 영역임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의식있는 행동이 개인이 아닌 팀 단위에서 펼쳐진다는 게 멋있다.

3. 그릴리쉬의 세레모니
잉글랜드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축구 선수 잭 그릴리쉬가 후반 45분 팀의 여섯 번째 골을 널었다. 그릴리쉬는 골 세레모니로 양 팔을 벌려 흐느적거리는 느낌으로 춤을 춰 주목을 받았는데, 이게 사연이 있었다.
그릴리쉬는 월드컵을 앞두고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11살 소년팬을 만났다. 이 팬과의 만남에서 그릴리쉬는 월드컵에서 골을 넣을 경우 소년팬이 원하는 세레머니를 하기로 했고 그 춤이 바로 그것이었다. 스토리를 알고 나니 더 멋있어 보인다.
그릴리쉬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사연이 더 있었다. 그릴리쉬가 4살이었을 때 생후 10개월의 남동생이 죽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형제 중에 장애를 앓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 그릴리쉬는 이 동생에 대한 애정이 정말 크다고 한다.
축구 선수도 한명의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생의 조각들이 얽혀져 월드컵에서도 드러난다. 가슴이 찡한 장면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