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제시장은 가벼운 영화··· 과하지 않았다

7일 오후, 시간이 나서 영화를 봤다. 영화관은 신도림 CGV. 12시쯤 하는 영화를 찾으려니 두세 개밖에 없었다. 다른 것들은 다 그저그러려니 하는 것들이라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 ‘국제시장’을 택했다.

‘국제시장’은 별로 내키지 않았던 영화였다. 내안에 ‘빨갱이’ 기질이 살짝 있는지라 ‘국제시장’이 보수층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게끔 하고, 진보라고 하는 층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거부감이 생긴 탓이었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보는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감.ㅋㅋㅋ 영화 관람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게는,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기 위해’, 또는 ‘왜 이것이 화제가 되는지 알기 위해’가 영화를 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렇게 해서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국제시장’을 자그마한 9관에서 보게 됐다.

약간 딴 소리긴 하지만 영화 시작 전 나오는 광고는 너무 많은 것 같다. 분명 25분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한 40분은 광고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관 광고는 TV광고보다 재밌긴 하다. 그래도 좀 자제해서 영화에 더 몰입하도록 해주면 좋겠다.

다시 돌아와서, 어떤 작품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드라마든, 한 마디의 말로 그것을 표현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주절주절 쓰기 귀찮으니 ‘국제시장’을 한 마디로 평가해보자면 ‘웃음과 감동을 주려고 작정하고 만든 가벼운 인생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국제시장’에 대한 말들이 많아 시작하기 전에는 마음을 단단히 잡았다. 보수층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생각보다 영화는 가벼웠다. 이 가볍다는 것은 흥남철수, 파독, 베트남 파병 등의 역사적 사건 자체가 가볍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런 사건들은 당시 살았던 우리 부모세대에게 크나큰 삶의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가벼움은 ‘인생의 영화화’가 가벼운 콘셉으로 진행됐다는 뜻이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유머코드는 대표적인 ‘가벼운 콘셉’이다. 특히 빵 터졌던 부분은 황정민이 김윤진 양의 ‘머리끄댕이’를 확 붙았던 장면(아래)이다.ㅋㅋ 머나먼 독일 땅에서 “나 잡아봐요~” 하며 로맨스를 만들려는 윤진양을 “잡았데이~” 하며 목이 꺾일 정도로 머리칼을 잡아챈 연기는 신선하면서도 따라하고 싶게 다가왔다.

국제시장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오달수의 ‘달구’도 감칠맛을 더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은 대부분 황정민이 오달수와 함께 겪는다. 둘은 6.25전쟁 후 동냥질을 같이 하기 시작해, 광부 자격으로 독일에도 함께 가고 베트남에도 기술자 신분으로 갔다오더니 할아버지가 된 현재까지도 서로의 손주를 돌봐주는 절친이다. 그는 별로 얄밉지 않았고 과하지도 않았다. 오달수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없었으면 아마 영화가 맥이 빠졌을 것이다. 그야말로 다큐멘터리가 됐을 것이다.

윤 감독은 또 영화 곳곳에 실제 인물들을 배치시켰다. 정주영 회장이나 이만기, 김봉남씨와 남진, 김동건 아나운서 등 나이 드신 분들이라면 큭큭거리며 웃을 수 있는 양념들을 (약간은 적나라하다싶을 정도로) 찰싹찰싹 뿌려놨다.

그래서 난 ‘국제시장’이 가볍다고 하는 것이다. 자칫 역사스페셜이 될 뻔한 이야기를 희화화시키려 노력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혹자는 이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이것이 그 시대의 전부인 양 과대포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평론가의 말마따나 ‘토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내게는 단지 윤덕수(황정민 분)라는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혹자들은 근대사를 미화했다고 하지만 나는 희화화로 본다. 또 윤덕수의 입장에서는 힘겹게 살아낸,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린 그 경험들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게 참 오랜만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나라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서’ 따위의 감정은 아니다. 그 당시 시대의 아픔이 내게 다가온 것도 솔직히 아니었다. 단지, 내가 저 상황이라면, 내 실수로 생이별한 동생을 몇십년만에 만난 오라비가 나라면. 인간 윤덕수가 머나먼 타국의 동생을 지켜보는 심정이 콱 꽂힌 것이었다. 이별과 만남은 어느 나라, 어느 공간에서도 통용되는 감정이 아닌가.

JK필름이나 CJ에서 지금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국제시장’을 만들었다는 말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팩트야 정확히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보수에 무조건 유리한 방향으로 가느냐는 명확하지 않다. 국민과 국가지도자 간에는 큰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국제시장’의 윤덕수의 삶이 고달프고 파란만장했던 것과, 당시 지도자들이 정치를 잘하고 국민들을 ‘진정’ 위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별개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진보적일 수 있다. 영화를 본 후 이승만을 비판할 수도 있고, 박정희를 씹을 수도 있다. 당시 지도자들의 공과 사는 역사에 켜켜이 녹아있다. 이것들을 발견하고 사색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이를 ‘보여준다’는 사실만으로 영화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국제시장’은 과하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