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정치인 몇몇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해 기사가 난 적 있다. 아, 그의 저서는 아니다. 최 교수가 서문을 쓰고 박상훈 박사가 번역한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이다. 이 책을 받은 이들은 안희정, 손학규, 정동영 등인데 다들 읽어봤을까 싶다.
‘마키아밸리’와 ‘군주론’ 모두 친숙한 단어들인데 실상 그 내용을 알진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고등학교 정치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한두줄 정도로 훑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냥 모른다고 보는 게 편할 거다.

처음 손에 잡은 <군주론>은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 속에 나오는 고유명사들이 익숙지 않아 읽는 데 애를 먹었다. 중세 유럽의 역사를 자세히 다루고 그 안에서 정복하고 통치하는 군주들의 사례가 풍부하게 나오는데, 세계사를 한번 짚어보고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나갈 수록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그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바는 꽤 명료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번엔 최장집 교수가 쓴 서문의 내용 중 <군주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문’이라고 하지만 꽤 양이 많다. <군주론>의 최장집 해설편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본편과 같이 읽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군주론> 21장에서는 “…실천적 이성이란 바로 그런 불편함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그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을 최선인 것으로 간주해 선택하는 것에 있다”라고 권고한다. 정치에서 선택이란 두개의 선 가운데 차선을 발견하는 것이라기보다 두개의 악 가운데 차악을 발견하는 것인 경우가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강론>에서 이 문제를 체제 선택의 사례를 통해 다시 제기하고 있다. 세상만사는 인간의 의지와 이성에 의해 창출되기보다 ‘불가피함’에 의해 인간의 통제 범위 밖에서 움직일 때가 많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면서 행위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부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폐해가 가장 적은 대안들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런 기준으로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그 사례로 베네치아·스파르타·로마를 비교한다.
(마키아벨리의) 결과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주장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실천적으로 공리주의적인 기준을 통해 행위의 근거를 풍부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적 의무론에 결박되어 있던 기존의 경직된 정치 이론에 대응하려 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공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정이든 공화정이든, 다시 말해 정치체제의 유형이 어떠하든 민중의 역할이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온다는 점은 두 텍스트 모두에 공통적이다. 수를 권력 자원으로 하고 다수 인구를 점하는 민중의 정치 참여,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은 정치적 역동성의 중심적 동력이 된다. 민중을 적으로 돌릴 때 통치자의 지배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노베르토 보비오는 정치적 사실주의/현실주의를 두 차원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사이의 대립적 구분으로, 이를 통해 유토피아적 모험주의와 도피주의를 질책하고 인간의 완벽함과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둘째는 사실적인 것과 겉으로 보이는 것을 대립시킴으로써 권력의 숨은 측면 즉 가면을 벗기고 현상 유지를 탈신비화 시켰다. 현실주의 또는 사실주의는 영어 realism을 우리 말로 옮긴 것인데, 현실 대 이상이라는 첫번째 구분에서는 ‘현실주의’에 가까운 반면, 두번째의 사실적인 것과 표상된 것 또는 나타나 보이는 것 간의 구분에서는 ‘사실주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마키아벨리는 두 차원 모두에서 현실주의자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헌정사에서 “높은 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고 낮은 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풍경 화가에 자신을 비유한다.
(저자의 말) 드라마 <군주론>은 화자인 마키아벨리가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정치를 하면 좋은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 나가는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공직에서 쫓겨난 자신이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희망을 넌지시, 그러나 강렬하게 내비친다.
결국 메디치 가문의 유력자 가운데 아무도 <군주론>에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공직에 복귀하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마키아벨리 역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