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추천으로 미드 ‘홈랜드’를 정주행했다. 현재 시즌 7까지 나왔으며 넷플릭스에서도 전편을 다 볼 수 있다. 마지막인 시즌 8은 2월 오픈된다고 한다.

홈랜드를 추천한 지인은 미국인들을 섹스애니멀이라고 했다.ㅋㅋㅋㅋㅋ 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다가도 눈만 맞으면 갑자기!(…) 홈랜드를 보면 그 표현이 굉장히 공감된다. 실제로 그런 장면들이 꽤 여럿 나온다. (아래부터 스포가 조금씩 포함됨)

동물적인 섹스가 미국인들의 보편적인 문화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도 홈랜드의 주인공이 정신 장애를 앓고 있어서 그런 장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아닌가 한다. 캐리 매시선. CIA요원으로 이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이며, ‘양극성 장애’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드라마 주인공이 으레 그렇듯이)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 중동 지역 지부장도 하고, 퇴사 후에도 이곳저곳에서 부르는 인물인데, 아마도 이 양극성 장애가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캐리는 평상시에 약을 먹으며 정신병이 발현되는 것을 지체/유지시킨다. 일정 기간 약을 끊으면 말 그대로 미쳐버린다. 굉장히 예민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며 횡설수설하고 환각과 환청도 경험한다. 이런 증상이 발현되지 않도록 약을 먹을 것을 항상 조언받고, 스스로도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캐리다. 그렇지만 드라마가 전개되고 위기에 빠지는 순간이 오게 되면 캐리는 일부러 약을 끊는다. 미치기 바로 직전까지 양극성 장애의 발현을 이용해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캐리는 홈랜드를 말그대로 하드캐리하는 캐릭터다. 대부분의 문제는 캐리를 통해 해결이 된다. 그렇지만 다른 드라마와 다른 점은, 캐라가 동시에 발암 유발 캐릭터라는 거다. 캐리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중간중간 짜증이 나서 나도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왜 갑자기 나서서 일을 크게 만들지?’ ‘법적으로 풀어도 될 일을 왜 저렇게 선을 넘으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떠오른다ㅋㅋㅋ 양극성 장애는 정말 캐리를 나타내는데 적합한 말인 것 같다. 그녀는 히어로면서 최고 악당이다ㅋㅋ 특히 딸내미를 데리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걸 보면 정말….ㄷㄷㄷ

캐리의 저 다양한 표정들(…)

시즌이 일곱개가 지나가면서 드라마의 지역적 무대도 계속해서 바뀐다. 미국에서 중동으로, 유럽으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시즌1~3은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다. 중동 테러단체에 잡혔다가 극적으로 풀려나온 해병대 군인이 테러단체의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즌 4~5는 각각 중동과 유럽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으며 6~7은 하나의 이야기로 미국을 무대로 한다. 곧 오픈될 시즌 8에서는 6~7을 마무리할 것 같다.

어떤 드라마라도 그렇듯 모든 시즌이 골고루 재밌는 건 아니다. 나같은 경우 시즌3까지 점점 재밌어지다 4에서 살짝 주춤했으며 5를 거치면서 다시 점점 재밌어졌다. 각각의 시즌의 성격이 다르고, 등장하는 인물들에도 조금씩 변화를 준다. 시즌을 거치면서도 고정인 하드캐리 캐릭터와 변주되는 조연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갤탭으로 그린 시즌별 주관적 흥미도ㅋㅋ

홈랜드의 매력은 반전에 반전, 다시 그 반전에 또 반전이 나온다는 거다. 미드를 계속해서 봐오다보니 반전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홈랜드는 거기서도 몇번을 더 비틀어버리니 반전 예상은 그만하고 맘편히 즐기는 게 낫다 싶었다.

내가 느끼기에 또다른 홈랜드의 매력은 이야기 전개의 속도가 매우 적당하다는 것이다. 이건 사람마다 느끼는 속도가 다를테니 다른 드라마와 비교하는 게 이해가 쉬울 것 같다. FBI의 프로파일러를 다루는 ‘블랙리스트’를 예로 들면, 이야기 전개가 매우 빠른 편이다. 갑자기 사건이 터지더니 이와 관련된 범인이 어느샌가 등장하고 그 사건이 금세 마무리되더니 또다른 사건이 터지는 식이다. ‘지정생존자’도 비슷한 느낌이다. 극중 인물들은 해야할 말만 탁탁 하고 넘어간다. (대사 속도도 비교적 빠른 편). 그만큼 긴박성을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지치기가 쉽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너무 이야기 전개가 안 돼서 늘어지는 경우도 많다. 나한텐 ‘마인드 헌터’나 ‘베터 콜 사울’이 그런 류였는데,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가 잘 안 되니 지루하다. 폰으로 보다가 졸아서 얼굴 위로 폰을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

내 생각에 대부분 잘 만든 드라마는 이 속도의 조절을 매우 예민하게 하는 것 같다. 긴장되는 장면은 미친 듯이 몰아치다가, 한 단락 마무리 되면 숨쉴 틈을 준다. 홈랜드는 그러한 밀당을 정말 잘한다. 그러한 밀당을 잘 하려면 촘촘한 연출은 필수다. 홈랜드는 쓸데없는 장면 없이, 던진 떡밥들은 성실하게 회수한다.

캐리의 절친이자 멘토이자 지원군이자 아빠 역할이자 상사인 사울

마지막으로 좋은 점을 하나 더 꼽자면, 매력있는 캐릭터들이 다수 나온다는 거다. 주인공인 캐리는 물론, 캐리의 곁에서 항상 캐리를 지원하는 사울, 특별한 인연이 될 뻔한 피터, 브로디와 그 가족, 캐리의 언니, 딸 프레니, 독일 요원들, 그밖의 CIA 요원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각각의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연출과 작가의 내공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누가 물어보면, 나는 홈랜드를 베스트 미드로 세손가락 안에 꼽겠다. 여운도 많이 남고, 언제 어떤 에피소드를 재생하더라도 생경한 느낌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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