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턴 논쟁: 한겨레와 한경의 시각차를 확연히 드러내는 사례

앵거스 디턴이 성장론자인 건 맞다. 본인도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다. “모든 분별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친성장(pro-growth)론자이다.” 디턴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디턴은 이렇게 부연한다.
“불평등은 성장의 부산물일 수도 있고, 성장을 위한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불평등)은 성장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장단점에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한겨레는 이 부분에서 불평등이 성장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는 워딩을 뽑아서 제목을 달았다. 디턴이 이렇게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2014년 한경BP에서 출판한 <위대한 탈출>에 대한 반박의 의미를 가진 제목일 것이다. <위대한 탈출>의 부제는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였다.

이에 대해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은 11월 3일자 칼럼에서 “디턴의 본질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며 “부분의 진술을 진술의 전부요 핵심인 것처럼 치환하는 교묘한 편집”이라고 비판했다. 과도하게 비판한 것처럼 보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한 건 둘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연구 업적과 학문 성향에 관해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진다. 정규재는 위의 칼럼에서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는 디턴의 주장을 폭넓게 인용하고자 한다. 더하여 ‘성장론자’라는 그의 워딩을 인용하며, 작년 출판된 <위대한 탈출>의 부제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또다시 반박한다.

여기에 한경BP 측의 입장 또한 맥을 같이 한다. 한경BP는 편집 과정에서 서문(Preface) 중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해 겹치는 부분을 중심으로 뺐”다고 말했다. 또한 “원문을 100% 그대로 전달하는게 옳지만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읽기 편하게 만드는 과정의 하나”라며 번역이 왜곡됐다는 비판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부제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으니 원래대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원래 부제는 ‘대탈출: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이다.

정리하면, 한경 측은 디턴의 ‘성장주의’에 집요하게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한 연유로, 성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불평등 또는 빈부격차를 일정부분 수용하고, 거꾸로 불평등을 통해 성장이 촉진되는 것처럼 얘기하게 된다.

하지만 디턴이 말하는 성장이란, 한 국가 내에서라기보다 국가와 국가 차원에서 일어나는 그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옳지 않나 싶다. “디턴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주로 가난한 경제를 주로 다루는 개발경제학 분야에 있다”는 평가를 참고해보자.

혹자는 그가 “불평등이 성장을 축진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경제성장론에서 말하는 ‘수렴이론(Convergence Theory)이지, 개인이나 가계의 소득불평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종합하자면, 디턴이 스스로 밝힌 ‘성장론자’라는 정체성은 그의 삶에서 볼 수 있듯 지구촌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나온 워딩이라고 봐야 타당할 듯하다.

그렇다고해서 한겨레의 주장이 100% 타당하다는 것도 아니다. 한겨레는 ‘한경BP는 어떻게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왜곡했나’라는 김공회 교수의 블로그를 인용한 글에서 조목조목 한경BP 측의 왜곡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10/30 토요일판에 실은 디턴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 한겨레 측이 디턴을 불평등을 옹호하지 않는 학자로 포장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더불어 디턴 교수가 한국의 불평등한 경제 상황을 비판해줬으면 하고 질문의 방향성을 잡았다. 이는 위의 정규재 칼럼에서 비판한 내용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불평등이 성장을 실직시킨다”는 워딩만을 제목으로 뽑은 것만 해도 그렇다. 디턴은 상식적인 선에서 불평등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 같으나, 한겨레는 나쁘다는 측면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에 반해 한경은 좋은 쪽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둘다 살짝 지나치게 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손을 들어주자면 한겨레 쪽이 좀더 낫다. 디턴 교수와 직접 접촉해 문제점을 밝혔고, 한경의 비약에 비해 실제 디턴에 좀 더 근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경은 되려 당사의 경제적 관점을 책에 투영시킴으로써 저자를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객체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비슷하게, ‘피케티 vs 디턴’의 구도를 만든 것도 비약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대한 탈출>의 서문을 쓴 자유경제원 현진권 원장이 토마 피케티와 대비되는 문구를 넣은 것은 “마케팅 차원의 시도”였다고 한경BP가 밝혔다. 당시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대다수 언론으로부터 찬양에 가까운 찬사를 받고, 경제서적임에도 불티나게 팔린 것을 감안해 이런 대결구도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불평등에 대한 여러 시각이 있다고 하지만, 피케티와 대척점에 있는 학자로 디턴을 규정하는 게 무리라는 해석이 많다. 피케티 교수의 주장이 진보 측에 유리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보수신문’인 한경에서 이를 상쇄시키고자 한 시도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한국판 <위대한 탈출>은 프리스턴대 출판부와의 논의 끝에 새번역본으로 다시 나오게 됐다. 한경BP에서는 새 번역본이 출간됐을 때 기존 구입자들에게 교환해주겠다고 하니, 구버전을 신버전으로 바꾸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면 좋겠다.

ps. 이와는 별도로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불평등을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에너지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게 눈길을 끈다. 이야말로 디턴에 대한 완벽한 왜곡이며 원로 정치인으로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노벨상을 받아 유명세를 치르는 학자라고 하지만, 인용을 할 때엔 단편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다.

ps2. 한경BP에 이런저런 비판이 많겠으나, 수익 측면에서만 보면 호재일 수도 있다. 논란이 어찌됐든 책을 한번 더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 번역본이 출간되면 더 완성도 있는 서적으로 홍보할 수 있으니 이또한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