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직업을 가진다면, 어렸을 적 기준에선 은행원은 생각도 안 해봤다. 그간 꿈의 궤적을 살펴보면 축구선수-과학자-소설가-물리학자-천체물리학자-검사-기자였는데, 한 사람 인생치고는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은행원은 없었다. 단순한 회사원의 하나로만 치부했던 것 같다.

이 사회에 정말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생겨나고 또 없어지는 걸 알았을 무렵, 선배들이 그리고 일찍 졸업한 동기들이 은행으로 입사하는 걸 봤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정확히 그들이 어떤 일 하는지는 관심없었다. 고객 응대 정도만 하는 줄 알았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기 위해 몇번 은행을 들락날락거리니 그제서야 행원이 매력있는 직업처엄 느껴졌다. 이런 권력을 가진 사람들… 아무리 떼쓰고 어르고 달래도 내 대출 한도는 정해져있고, 그들은 매우 스트릭트하게 그러면서도 동정을 느낀 듯한 표정으로 “우리가 다 해드리고 싶지만 정해진 룰이 있기 때문에 따라야 해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이렇게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 뒤에 부지점장이 있고 지점에 따라선 지점장이 있다는 얘기. 이 책을 보니 좀 알겠더라.

지점장은 온갖 돈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인 듯 하다.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은>의 저자도 그걸 장점으로 꼽았다. 의사는 병자들만 만나고 경찰들은 범죄자와만 만난다면, 행원은 잘 나가는 사람들과 긴밀하게 어울릴 수 있다. 돈으로 엮인 관계가 피상적이긴 하지만 서로에겐 이와 잇몸같이 꼭 필요한 존재니까. 그런 삶을 동경한다면 행원도 좋겠다 싶다.

일의 본질은 영업이란 생각도 책을 보면서 들었다.
어느 회사나 그럴 거다. 언론사도 그렇다. 그래서 차장 부장 올라갈수록 영업을 뛰게 된다. 경영의 중심으로 차츰차츰 들어오는 것이다.
행원도 마찬가지. 부지점장, 점장 올라갈수록 큰손 고객들을 만나 자기쪽으로 끌어와야 된다.

영업을 위한 관계를 맺는 데 창의성이 중요한 것 같다. 외향적 성격도 장점이 되지만 점점 직장 생활을 할수록 거기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활발해도 싸가지 없으면, 적극적이어도 맨날 똑같은 패턴으로 그 나물에 그 밥이면 상대하는 사람 별로 마음 안 끌린다. 머리를 써서 어떻게든 남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기발하게 하는 게 포인트. 저자가 그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직장 생활 오래 하려면 점점 개발해야 할 능력이리라. 아마 창업을 하면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사장의 마인드로 직장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가보다. 저자도 말한다. “지점장이 된 것처럼 행동하라”

하지만 이 책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생각은 많지 않다.
읽다보니, 그간 만나왔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내가 너희들을 정말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을 에둘러서 전하기 위해서 책을 쓴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날카롭고 비판적인 어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 참고. 중간중간 감사하다는 말이 얼마나 많던지.

긍정적인 어조로만 꽉 차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 별로였다.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 저자는 실제로 이러한 마인드의 소유자이며 그런 태도로 살아왔을 수도 있다. 그랬기에 지점장에도 오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감정의 미화와 과장이 군데군데 드러나 읽기가 거북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른 류의 밥벌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기엔 괜찮은 책 같다.
아, 저자는 ‘우리은행’ 출신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당에는 가장 고민이 깊은 두 세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고자 애쓰는 청년들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주역에서 밀려나는 베이비부머들이다. 그들 사이에는 40년 세월의 거리가 있는데도 어떤 면에서는 많이 닮았다.

p35

우리도 가칭 ‘베이비부머아카데미’ 같은 것을 만들어 스스로를 새시대를 이끄는 지도세력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어떨까? 우리 힘으로 새로운 의미의 은퇴자 르네상스 운동을 전개하다는 것이다.

p39

우선은 주 거래처인 D항공과의 관계를 전보다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그들이 자랑하는 운동부인 남자배구를 적극적으로 응원하도록 하자. 또한 항공사 직원들과 대화할 때는 반드시 ‘우리 D항공’이라고 호칭하여 친근감을 높이도록 하자.

p53

개성폭포와 그 옆에 있는 사찰을 구경했다. 선죽교와 고려박물관도 들렀다. 가는 곳마다 지팡이 같은 수제품이나 먹을 것들을 팔았는데, 아이스크림은 입에 맞지 않았고 겹과자는 한입 베어 물었다가 뱉어내야 했다. 어딜 가나 공업 생산품은 보이지 않았고 뱀술이나 고사리 말린 것 등만 눈에 보였다. 개발이 덜 된 동남앗아 어느 나라에서나 으레 마주할 수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p89

나쁜 고객들은 가장 좋은 고객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신임을 얻기 위해 일정 기간 성실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다 때를 만나면 본색을 드러낸다.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오랫동안 준비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일단 사고를 친 후에는 안면을 싹 바꾼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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